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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염력> 리뷰

연상호식 풍자에 흠뻑 취해버렸다



부조리를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 <부산행>에 이은 감독의 두 번째 실사 영화다. 사실 필자는, 감독에 대한 팬심이 있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그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감상한 이후,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색을 벗어난 '특별한' 매력으로 필자에게 충격을 선사했던 그였다.


<염력>은 소재와 주제 면에서는 2016년 개봉된 <서울역>을 잇는다. 두 작품 모두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설 곳 잃은 이들이다. <염력>에서의 주인공들은 상가 재개발 대상에 처해, 철거민 신세에 놓인다. 이들은 자신의 상가를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백 없고 돈 없는 그들의 발버둥은 약자의 한계에 부딪힐 뿐이다.


철거민들의 대표적인 인물인 신루미는 어머니와 함께 치킨집을 운영 중이었다. TV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로 남다른 사업력을 뽐냈던 그녀였지만,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철거 용역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어머니가 사고사를 당하게 되고, 이 때문에 루미와 이웃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루미를 통해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석현이 장례식을 찾게 되면서, 부녀는 10년 만에 재회한다. 약수물을 잘못 마신 후, 돌연 염력을 갖게 된 석현은 기이한 힘을 발휘해 밥벌이할 궁리를 마련한다. 그러던 중, 용역들의 육탄 공격이 더욱 거세지고 석현은 온몸으로 염력을 발휘해 방어하기 시작한다.





석현은 그야말로 한국형 수퍼 히어로다. 감독은 왜 이렇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지닌 캐릭터를 통해 부조리에 맞서려 했을까. 이유는, 초능력 이외엔 돈과 권력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철거민들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시킨다. 석현이 라이터를 눈빛으로 끌어잡는 모습에서부터 표정과 몸을 비틀고 공중부양까지 하면서 용역들을 방어하고 무찌르는 장면들은 위대함의 감탄보다는 조소를 연발케 만들기 일쑤다. 하지만, 이같은 초능력 없이 용역들을 대상으로 승리를 거둔 철거민들을 다뤘다면, 관객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은 전개 역시 무리수이다.





영화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직설하는 인물은 홍상무다. 타고난 권력, 재력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당해낼 수 없다면서 자신 역시 돈으로 타인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내비친다. 부조리한 권력자들은,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경찰들을 앞세워 부조리의 힘을 강화한다. 죄 없는 이들의 생계권을 빼앗는 부조리를 감행하는 세력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염력>은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한국형 수퍼 히어로를 통해, 부조리를 타파하고 권선징악을 보여준다. 수퍼 히어로를 다룬 영화들은 많이 봐왔을 것이다. 하지만 <염력>의 석현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날것 그대로의 온몸 액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어설픔을 잔뜩 안은 날 것 그대로의 액션 신은 매력 다분하다.


<염력>이 다루는 소재는 아프고 무겁다. 하지만 결코 슬프진 않다. 오히려 행복 바이러스를 내뿜는 엔딩 신 덕분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영화관을 빠져나갈 수 있는 영화다. 고통과 아픔도 재미있게 표현해낸 감독의 풍자력이 돋보였던 이 작품. 같은 소재를 다룬, 지난 1월 25일 개봉작 <공동정범>과 함께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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