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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루기의 기술>

'체계적인 미루기쟁이' 되기

미루기의 기술?

오호! 제목부터 '어머, 이거 내 얘기 아니야?' 라며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미루기의 기술>은 위트 넘치는 철학교수, 존 페리가 자신의 '체계적인 미루기' 성향을 토대로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오히려 체계적인 미루기가 효율적인 면도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를 들어가는 책이다.


잠깐!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저자는, 단순한 미루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 '체계적인 미루기'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늑장만 부리고, 내가 아닌 타인에게 떠넘기려는 생각으로 미루고 미루기를 반복하는 단순 미루기가 아닌, 미루기를 통해 다른 효율적인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체계적인' 미루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미루기의 기술>은, 고대 철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다'에서부터 의문을 품고 시작된다. 합리적인 동물인 인간은 왜! 다이어트 중에도 쿠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데드라인을 어기며, 알람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지 못 하는가! 그렇다. 아마, 앞서 말한 세 가지 사례에만 적용해봐도 우리 모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합리적인 인간'에 반기를 든 철학자들은 존 페리 이전에도 많이 존재해왔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성을 잃는 이성적인 동물이다'라고 했으며, 버트런드 러셀은 '흔히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나는 평생토록 이걸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 헤맸다'라고 했을 만큼 우리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한 동물에 불과하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만 한 기계'가 아닌 '욕구, 신념, 충동, 변덕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성에 의해서만 움직일 리 만무한 존재다.


저자는 체계적인 미루기를 통해, 유익하지만 겉보기에 덜 중요해 보이는 다른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체계적인 미루기란, 최우선 순위에 있는 일들을 지금 당장 실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체계적인 미루기로 인해 뒤따라오는 부가 혜택을 읽을 때면 '오호- 이거, 미루면서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겠는걸?'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될 것이다. 체계적인 미루기 도중 어떠한 일은 상황에 의해 하지 않아도 될 일로 될 수도 있으며, 영화<멜랑꼴리아>의 커스틴 던스트의 캐릭터를 예로 들어가며 조급해하지 않아 침착과 평정심으로 오히려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한편, 체계적인 미루기를 통해 어떠한 일을 정말 하고싶어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으며, 기다림을 통해 일을 처리할 때의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기는 미덕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도 동의한다. 미루기는 미덕보다는 결점에 가깝지만, 체계적인 미루기 습관으로 오히려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뿐만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한 번 쯤은 미루기를 해봤을 것이며, 실행과 달리 마인드에서는 미루기의 본능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미루기쟁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이 <미루기의 기술>이다.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미루기의 효율성이 잘 정리된 책<미루기의 기술>. 자칫 합리적인 부지런쟁이 유형에 가까운 독자들의 눈살을 지푸리게 만들 수도 있는 책이지만,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해왔던 필자조차도 이 책을 읽으며 무릎을 연타로 쳤고, 보다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차분히 업무를 해나갈 수 있게 됐으니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기를 고쳐나가려는 독자들을 위해 수록한 논문 및 책들의 일부를 읽으면 왠지 체계적인 미루기쟁이가 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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