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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행> 리뷰

결혼, 모두에게 초행길

영화 <초행>은 연애 7년차 커플의 결혼 전 일상을 다룬다. 동거 중인 수현과 지영. 어느 날 지영의 '생리 끊긴 지 2주째'라는 고백을 듣게 된 수현은 "진짜야?"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해답도, 큰 걱정도 하지 않는 듯하다. 임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한 지영. 그야말로 걱정이 태산이다.


수현과 지영은 각자 부모의 집에 함께 방문한다. 먼저 방문한 곳은 지영의 집. 인천에 있는 지영네 집은 별탈 없이 무난하다. 다만, 지영의 엄마는 딸에게 결혼을 압박한다. 여느 딸처럼 자랑거리 하나 없다며 지영을 타박하는가하면, 수현에 대해 다소 못마땅해하는 기색이다. 이에, 지영은 자신이 '이 집에서 결정권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화를 내비친다.

이렇게 일단락된 뒤, 둘은 수현의 집으로 향한다. 강원도 삼척에서 횟집을 운영 중인 수현네를 찾게 된 이유는 수현 아버지의 환갑 잔치 때문이다. 겸사겸사 인사도 할 치레로 찾은 둘. 하지만, 저녁 때 모인 수현네 가족은 수현 아빠의 취사로 난장판이 되고, 수현의 고집으로 둘은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이 와중에, 수현 엄마와 지영이 나눴던 대화가 인상적이다. "살아보고 결혼 해."라는 수현 엄마의 말에 "살아봐도 모르겠으면 어떡해야 하죠?"라며 심경을 토로하는 지영. 이들의 대화 신(scene)이 <초행>의 주제 의식을 담은 핵심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이들. 광화문 광장 일대 시위 때문에 도로가 막히게 된 상황. 둘은 차에서 내려, 요기를 하고 소소한 길거리 데이트를 즐긴다. 10년차 미술학원 강사인 수현과 방송궁 계약직 지영. 이들은 서른이 넘었지만, 불안정한 직업을 둔 채 살아가고 있다. 동거로, 결혼 예행을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확신도, 확정도 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현 시대 청춘들의 연애와 결혼 풍토를 확인할 수 있다.



어딜 가든 마음 편하지 않은 이들이지만, 사랑 그 하나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둘의 소소한 데이트 장면은 영화의 그 어떤 장면들보다 행복해보인다. 겨울철, 몸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어묵꼬치와 국물이 주는 행복.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며, 요즘 시대엔 살아갈 형편을 걱정해 더 쉽게 결정내리지 못할 대상이다. 청춘 남녀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녹록지 않은 현실. 매일이 초행인 것처럼, 결혼 역시 '엄청난 초행, 그리고 가시밭길'이다. 아무리 연습한다고 해도 앞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패턴을 보여주는 영화 <초행>. 내비게이션 없는 차를 운전하며 티격태격대는 수현과 지영의 모습은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적이어서 더욱 공감됐던 <초행>. 30대 전후의 관객들이라면, 그 공감대가 더 깊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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