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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쓰리 빌보드> 리뷰


'분노는 답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분노가 때로는 유일한 답이 될 때도 있다. 물론, 분노는 분노를 낳는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 분노의 취약점이지만, 그래서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는 있지만 <쓰리 빌보드> 속 상황은 그와는 다르다.


7개월 전 딸을 잃은 밀드레드. 죽기 직전까지 강간당한 딸의 죽음에 대한 경찰 수사에 화가 난 그녀는, 무능력한 경찰을 고발하기 위해 1896년 이래로 사용된 적 없는 도로 위 광고판 세 개에 도발적인 카피를 내건다. '죽어가는 동안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체포하지 못했다' '뭐하고 있는거야, 윌러비 경찰소장'. 밀드레드는 경찰 소장이 수사의 책임을 맡아야 한다며 그의 이름을 내걸었고, 경찰들에 딸의 사건을 환기시켰다. <쓰리 빌보드>는 이 광고판으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사건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예상했던 것들을 빗나가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하나 둘씩 벌생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죽음까지 발생한다. 경찰에 대한 피해자의 일방적인 보복, 경찰의 행태 고발 등에 대한 단순한 전개가 아닌, 예상을 무너뜨리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멈추지 않는 분노, 분노가 일으킨 또 다른 분노, 폭력이 낳은 폭력, 살인으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살인. 이는, 처참한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은,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더하여, 미국 전역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폭력 등의 부조리가 고발된다.



영화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듯,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기 때문에 분노는 답이 아니다. 분노의 악순환은 세 개의 광고판과 세 명의 주된 인물의 관계에서 상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쓰리 빌보드>는 인간 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윌러비 형사의 유서에 담긴 '형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사랑이다'는, 휴머니즘을 압축하는 글귀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가득한 선함, 사랑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고유의 본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과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쓰리 빌보드>. 메시지와 흥미진진한 전개에 비해 흥행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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