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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의 부탁>


최근 감상했던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로부터 느꼈던 감정이 특별했기에, 그의 최신작 <당신의 부탁>도 기대를 안고 영화관을 찾았다. 아무래도 이 감독은 가족의 의미와 그들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은 듯 보인다. 낯선 인물들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각자의 상처를 털어놓는 과정.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면서 결국 관계가 좁혀지게 되는 결말.

사람 간의 정(情)이 주는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다. <당신의 부탁>의 주인공 효진은 나이 서른 둘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18살 종욱의 엄마가 된다. 종욱은 효진의 전 남편의 아들이지만, 효진의 친아들은 아니다.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 효진은, 좀처럼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종욱을 향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종욱은 효진 몰래 (친)엄마를 찾아나서는 등 효진과의 동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효진은 한껏 속이 상한다. 거기에는, 좀처럼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와의 갈등도 한 몫 한다. 효진의 엄마는, 효진을 임신한 탓에 불우한 가정을 시작하게 됐다며 끊임없이 신세 한탄을 하는가하면, 효진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재차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낸다. 이 불편하고 따가운 가시는, 결국 효진의 심신을 병들게 만들고 만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효진과 종욱은 혈연이 아니지만, 어찌됐든 얽혀있다. 엄연히 따지자면 '전 새엄마'였다. 하지만 종욱은 효진을 엄마로 인정하지 않고, 효진 역시도 종욱을 아들이라 여기기엔 부담스럽다. 하지만, 혼자 나앉게된 종욱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에 모성애가 발휘됐고, 자신의 의지가 더해져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종욱에 대해 효진이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선택한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그 포기한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모든 이에게 선택의 순간이 온다. 사실, 우리 모두의 현재는 모든 선택의 과거로부터 비롯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효진이 종욱을 아들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효진은 종욱을 받아들임으로써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발생했다. 이 선택에 대한 문제는, 종욱의 친구 주미의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기까지는 수많은 고충이 따른다.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라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후회도 동반되게 마련이다. 이 후회마저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각오가 되어있어야만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당신의 부탁> 속 선택들은 꽤나 복잡하다. 이유는, 개인만의 선택이 아닌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선택들이기 때문이다. 종욱이 효진의 아들이 된 것, 주미의 아들이 입양되는 것 등은 한 가정에 편입되는 당사자들의 의사(선택)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을 통보받은 이들은 훗날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영화는 이렇듯,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주게 만든다.

영화를 보며 줄곧 연상됐던 영화가 있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이다. 혈연 아닌 아들을 양육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통해 '진짜 아버지'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작품이다. <당신의 부탁> 속 종욱도 이런 말을 한다. "키워준 사람이 진짜 아버지지."라고. 이같은 인식을 갖고 있는 종욱은, 언젠가는 효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만 같다.



영화는 말한다. 엄마, 모성애는 본능이 아닌 선택과 노력에 의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혈연, 필연에 의한 관계가 아닌, 만들어지는 관계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함께 식사하는 식구가 되고, 서로의 상황과 상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영화 <당신의 부탁>.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인지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상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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