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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1그램>

영혼이 두 번 주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현생 뿐만 아니라 전·후생에 대해 궁금해한다. 전생을 점쳐보고 후생의 행복을 위해 종교를 갖고 기도한다. 부활과 환생. 이것들이 설사 실재한다고 해도 동시대에 진행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물론, 이것도 추측이지만).

<21그램>은, 그에 대해 친밀하게 접근한 작품이다. 동시대에 주어진 두 번의 삶. 이것이 완전한 망상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심경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사고로 남편과 아이들을 잃고 슬픔과 마약에 취해 살아가는 크리스티나 펙. 범죄자로서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종교에 의존해 변화하길 원했지만, 크리스티나의 가족을 잃게 만든 주범이 된 잭 조단. 한편, 심장 이식을 기다리던 남자 폴 리버스는, 크리스티나의 남편 마이클의 심장을 이식받게 된다. 이후로, 크리스티나와 폴, 그리고 잭은 얽히고설킨 관계가 된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얽힌 관계는, '영혼'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마이클의 영혼은 심장이라는 상자를 통해 폴에게 전해지고, 이는 어쩌면 마이클의 삶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이클의 영혼은, 폴의 육신을 입고 환생한 셈이다. 마이클의 영혼은 크리스티나와의 사랑과 잭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고, 이는 결국 또다른 파국을 맞게 된다. 어찌됐든, 복수는 옳지 않다. 사고로 인해 사라진 영혼이라 할지라도, 신은 복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영혼의 구원을 통해 삶이 이어졌을 때, 우리는 선(善)한 의지를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21그램이라는 아주 가벼운 무게이지만, 영혼은 무거운 육신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존재다. 영화<21그램>은, 생사(生死)와 선악, 구원과 속죄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우리 삶에 있어,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영혼이 삶에 미치는 실질적인 무게감을 얼마인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야만 한다. 육신이 살아있을지언정 영혼이 죽었다면,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다. 

비순차적인 전개, 인물들의 흔들리는 감정을 가시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한 핸드헬드 기법이 영화감상의 풍미를 더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삶에 대한 집요한 고찰은 언제나 필자의 영혼을 살찌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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