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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항에서 일주일을>

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공항에서의 깨달음

어디에서든 깨달음은 존재한다. 다만 어떤 이가 얼마만큼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깨달음의 존재를 발견하고 깨우쳐 나가느냐에 따라 학습의 깊이가 달라질 뿐이다. 일상에서 자신의 글감을 발견하기를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은 제목에서처럼 '공항'에서 일어난 일들, 작가가 발견한 것들, 듣고 이해한 것들에 의해 작성된 책이다.



2009년의 어느날,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 동안 머무르며 글을 써달라는 이색적인(?)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어쩌면 그만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이기에 가능했던 이 일로 인해 우리는 '공항에서의 깨달음'을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된 것. 드 보통은 충분한 숙식의 편의와 함께 공항의 여러 구역을 돌아볼 수 있는 특혜를 얻게 됐고 다양한 관찰과 글쓰기를 통해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완성해냈다.


책은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의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좀 더 책의 내막을 들어내보이자면, 드 보통이 현장을 스케치하고 보이는 것을 통한 깨달음이 글들로 표현되어 있고 글들의 침범을 받지 않는 구역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가 풍경들을 포착해 낸 사진들이 자리잡고 있다. 공항이라는 제약된 공간 속에서 드 보통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들을 접한다. 그 시선을 통해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저자들과 공유한다. 그저 이동을 위해 당연히 거치게 되는 곳으로만 간주되던 강철로 구성된 공간이 드 보통에 의해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춘 곳으로 변해간다. 한편, 그는 화성인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단 한 곳으로도 이곳을 꼽았다.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직업을 지닌 사람들과 만난 드 보통의 사색을 통해 공항이라는 곳이 새로이 느껴지기도 했다. 공항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항 내의 일을 해학적으로 풍자해내는 것 또한 드 보통의 매력이다. 위트 넘치는 그의 글 덕분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공항 내의 모습들을 알게 되었고(꼼꼼히는 아니지만), 필자 역시 봐왔지만 간과했던 풍경들(사람과 사물 모두 포함)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드 보통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그에게 있어서 '여행'은 많은 깨달음을 주는 활동으로 보인다. 특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클로이를 만난 곳도 비행기였으며 <여행의 기술>을 통해 여행을 찬미하는 것을 보면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여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생생한 교육현장이다. 생생한 교육현장으로 떠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통로인 공항. 이곳을 필자는 사람이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 혹은 사람이 탄생하기 전 가장 소중한 공간인 자궁이라고도 생각해봤다. 저자가 머무르면서 관찰하고 사색한 결과를 확인하면서 '이번에도' 감탄을 반복했다.


공항이라는 단 한 곳에서 쇼핑과 여행의 단상, 저널리즘의 환상,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 가족관계의 문제, 공항 내 직원들의 사명감과 역할, 사회구성원들의 역할 등을 끌어낸 드 보통 특유의 자질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비범한 책이다.






[책 속에서]


공항 천장의 튼튼한 강철 버팀대들을 보면, 19세기 커다란 기차역의 비계를 떠올리며 경외감을 맛보게 된다. 모네의 「생 라자르역」과 같은 그림에 나타나는 그 경외감은 이런 강철 팔다리로 이루어진 빛이 가득한 공간, 그것도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 처음 발을 딛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이런 건물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인류가 거대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

지붕의 무게는 1만8,000톤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치는 강철 기둥들은 자신들이 받는 압력을 거의 느끼지 않는 듯 하다. 이 기둥들은 우리가 우아함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움의 하위범주에 속하는 자질을 갖추었으며, 이런 자질은 건축물이 겸손하게도 자신이 극복한 어려움을 내세우고 싶어하지 않는 곳에서 눈에 띄곤 한다.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이 기둥들의 목 위에 400미터 길이의 지붕이 균형을 잡고 있는데, 마치 아마포로 만든 차일이 사뿐하게 얹혀 있는 듯하다. 모름지기 짐이란 이렇게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p.45~4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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