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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현실적인 멜로드라마

2011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이제서야 정식 개봉을 앞둔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영화 속 인물들은 '미치도록 사랑'했고, 영화를 접한 필자는 '미치도록 공감'했다.


필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깊은 공감대를 느꼈을 거다. 첫 번째 이유로는, 인류 보편의 소재인 '사랑'을 다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모두가 같진 않을 테지만 우리도 한때(혹은 진행형) 그들과 견줄만한 뜨거운 사랑을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크 크레이지> 속 영국 여자 '애나'와 미국 남자 '제이콥'은 첫눈에 반한다. 학교를 위해 LA에 거주 중인 애나와 본 고향이 LA인 제이콥은 그렇게 강렬한 끌림 하나만으로 열정적인 사랑을 펼쳐나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들은 한시도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그렇게 둘은 한없이 가까이, 아니, 한몸이라 여겨질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애나의 비자 만료로 인해, 둘의 거리는 멀어지게 된 것이다. 어떠한 노력 앞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둘은 그렇게 '롱디' 커플이 된다. 서로를 볼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지내는 그들. 하지만, 젊은 그들은 눈앞에 굴러들어오는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다. 즉, 각자의 연인이 생기게 된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관계의 법칙. 애나와 제이콥의 관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정말 사랑하지만, 둘을 갈라놓은 현실적인 벽 앞에서 그들은 서서히 멀어져간다. 물론 그들은 '더 그리워'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나가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깊고 진한 사랑은 포기를 모른 채 이어진다. 끝내 둘은, 영국에서 단출한 결혼식을 행한다. 결혼까지 했지만, 함께 지내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른다. 온갖 역경을 거친 그들은 과연 행복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라이크 크레이지>는 열린 결말을 제시한다. 물론, 앞날을 암시하는 암호 같은 것은 내비친다. 갖가지 문제들이 해결돼 둘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게 됐을 그때의 둘 사이는 첫 만남보다 훨씬 서먹하다. 맨살을 맞댔음에도 사랑의 욕망보다 어색하고 차디찬 기운이 감도는 엔딩 신은 착잡함 그 자체다. 'Like Crazy, 미치도록' 사랑했던 둘의 과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냉랭하다.



<라이크 크레이지>가 좋았던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변화를 솔직하게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늘 함께 있어도 질릴 것 같지 않을, 하나가 되고자 맹세하고 싶을 만큼의 감정이 다양한 이유들로 무뎌지고 식어가는 것. 상상하기는 싫지만,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감정의 변화다. 미치도록 사랑해, 나의 한 켠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제이콥은 애나에게 'Like Crazy'라는 글귀를 새긴 의자를 만들어줬다. 제이콥을 향한 매 순간의 감정을 놓치기 싫어, 기록하고 또 기록했던 애나의 다이어리 역시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도구다.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히고 굴복했음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을 뛰어넘었던 두 남녀의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결말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은, 초반의 뜨거웠던 감정선과는 정반대의 것들이다. 착잡하고 먹먹한 감정뿐이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90분으로, 짧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확인하고, 또한 전해받을 것이다. 다양한 사랑의 온도를 간접 체험한 이유 때문인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공허함이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걸, 공허함에 도달하기 위해 시작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뜨거운 사랑을 했을 땐 이별 후 미련 따위도 남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걸 다 바쳤기에 그 모든 것이 송두리째 뽑혀, 슬픔이나 미련 따위도 남지 않았던 것 같다.

이처럼 <라이크 크레이지>는 현실적인 사랑을 노래한만큼, 자신을 둘러싼 사랑의 감정을 되새기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사랑이라는 건 사랑만으로만 이어갈 수 없다는 (가슴 시린)교훈을 지닌 이 영화. 한편으론, 사랑하는 이와 언제든 볼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쨌든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이든 관계든, 시작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힘들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할 것 같다. 사랑은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행하는 이들도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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