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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눈꺼풀>,
고통스럽지만 똑바로 봐야만 한다

비통하고 애잔하고 슬펐던 영화 <눈꺼풀>. 달마가 눈꺼풀을 도려내면서까지 무언가를 보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살점이 찢겨나갈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직시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인 동시에, 유가족과 국민들로 하여금 애도와 추모를 유도한다. <눈꺼풀>은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사건의 정보와 그 참담함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 절절한 슬픔과 가슴 찢길 듯한 고통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사실, 이 영화는 만들어진지 오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서야 비로소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그간의 정권은, 이같은 영화가 공개되는 것을 처단했다. 사건뿐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우리는 침묵하며 앓아왔던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외딴섬, 미륵도다.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섬에는 먼 길 떠나기 전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는 떡 찧는 노인이 있다. 외로이, 다양한 의식을 보여주던 노인은, 라디오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접한다. 이후, 바다에 큰 폭풍이 몰아치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섬에 찾아온다. 그들을 위한 쌀을 빻으려 하지만, 절구통이 부서지고 만다. 욕이 절로 쏟아지는 상황. 이 상황에 노인에 의해 여과없이 드러난다. 한편, 앳된 학생들에게 '여기는 너희가 올 곳이 아니다'라며 화를 내는 모습 역시 우리 모두가 희생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품으로 상징되는 주인 잃은 신발과 핑크빛 여행용 캐리어들은 등장만으로도 울컥하게 만든다. 노인의 손에 의해 쓰다듬어지는 유품들을 볼 때면, 가슴 한 켠이 애잔하다. 특히, 캐리어 가득 담긴 바닷물은 유족과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는 이들의 뜨거운 눈물을 상징하기도 하는 듯하다. 이 외에도, 뱀, 지네, 풍뎅이, 흑염소, 쥐 등 다양한 상징을 지닌 동물들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특히, 쥐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부서진 절구처럼, 세월호 사건 당시 사회와 관계의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부서진 절구를 던져버리자, 미륵이 깨어난다. 하지만 미륵조차 세월호 희생자들을 구해내지는 못했다. 뒤늦은 염원이지만, 감독은 이렇게라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있다.



아프고, 또 아팠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 라디오로부터 흘러나온 이후, 그러니까 이 영화가 명백히 세월호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확인한 이후부터는 고통과 가슴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울려도 받지 않는 벨은 목놓아 울부짖고 누군가를 불러보려 했던 희생자들의 외침과 다름 아니다.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지만, 차마 눈 감을 수 없었던 영화 <눈꺼풀>. 우리는 이 영화를 똑바로 봐야만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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