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제 필름마켓에 온 영화사 직원 만희는 영화사 대표로부터 영문 모를 해고 통보를 받는다. 명확한 해고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은 묘연한 말만 남긴다. "난 네가 순진한 건 아는데, 순진한 것과 정직한 것은 달라."라고.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만희는 아리송하다. 자신이 대표에게 어떤 부정직한 행위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해고의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해고의 이유에는 소 감독이 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만희의 해고 이유가 점차 밝혀지는데,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는 프랑스 여교사 클레어의 역할이 크다. 취미로 시를 짓고 사진을 찍는 그녀는, 우연히 만난 만희와 소 감독, 그리고 영화사 대표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진을 찍는 순간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라고.



같은 사람이 카메라에 담겼다는 이유로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재기하는 소 감독. 카메라가 담는 순간은 찰나이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다. 한 번 저지르면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것. 이와 같은 맥락으로, '술 때문에' 순간의 실수를 저지른 소 감독과 만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아야만 했다. 어찌됐든 확실한 사실은, 술은 원수라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서는 술이 등장하고 술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순간을 탐닉한다. 그런데 <클레어의 카메라>에서는 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원수'가 등장한다. 바로 카메라다. 이 카메라는 단지 인물을 찍는 대상일 뿐이지만, 관계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면에서 누군가에겐 원수가 된다.



이 영화에서의 카메라는,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 핵심 도구인 동시에 인물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도구로도 작용한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클레어를 만난 만희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말할 상대가 필요하다."라고. 어쩌면 그 상대는 클레어인 동시에 클레어의 카메라이기도 하다. 만희는 클레어의 카메라를 통해 진실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진과 영상 등 무언가를 담아내는 것들은 위험하다. 이 위험의 이유는 솔직하다는 것과 동시에 왜곡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카메라는, 사실을 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팔기 위해 왜곡되기도 한다.

진실과 왜곡. 이 영화에서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바로 '진실'이다. 하지만, 만희와 소 감독의 밤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보여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클레어의 카메라와 인물들의 대사들로만 그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밤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결론짓는다. 이 시각은 영화사 대표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와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듯한 행동은 이해 불가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그녀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메시지가 바로 홍 감독의 외침이 아닐까.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느낌. 영화에서 등장하는 진실과 말할 대상이라는 단어를 엮어보면 '진실을 말할 대상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어찌됐든 홍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을 왜곡하지 말라,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이 영화에 모든 진실을 담았다고 볼 수는 없다. 어찌됐든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 역시,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물이니까. 직접 쓴 대본과 함께 연출된 쇼트들은 어찌됐건 자신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클레어의 카메라>의 연출 스타일에서는, 최근 작품들에서 주춤했던 홍 감독의 작가성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 홍 감독의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원형성의 묘미가 되살아난 것 같아 흥미로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판타지 로맨스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