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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공간, 그리고 토포필리아

자, 이제 타이페이 카페 같은 곳을 정말로 가보고 싶어지는가? 그것이 바로 토포필리아(Topo-Philia)다. 장소를 뜻하는 희랍어 Topos와 사랑이라는 의미의 Philia가 합쳐진 복합어. 토포필리아는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이라는 사람이 조형해낸 개념이다. 이 푸 투안에 의하면 공간Space와 장소Place는 다른 개념이다. 공간은 영역이 구체적이지 않고 나한테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장소는 영역이 정해져 있고, 특정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장소와 장소 상실>의 저자 애드워드 렐프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무장소성에 빠져 있다고 한다. 
도무지 좋아하는 장소도 없고, 마치 둥둥 떠다니는 좀비처럼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장소도 없고 행복감을 주는 장소도 없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박물관, 놀이공원, 테마파크 같은 것을 만들어 사람들의 장소감을 자극하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토포필리아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진짜 장소여야 한다. 그곳에만 가면 행복하고,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애잔한 느낌마저 드는 곳.

-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 137, 139 중에서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스틸컷, 출처: DAUM영화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나 역시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배우들을 보는 재미뿐 아니라, 영화가 지향하는 가치와 메시지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물물교환이 이뤄지는 카페라는 장소 컨셉트부터 호기심을 자극했었던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지인들에게 종종 추천해왔고, 나 역시도 잊힐 때쯤 다시 보곤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커피향이 코 주변에 번지는 듯하고 재즈 선율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남자'의 여행담 덕분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에도 휩싸이곤 한다. 어찌됐든, 총체적으로 '내 스타일의 영화'다.

책 속 인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유독 이 영화에서는 장소가 주 소재로 활용된다. 특별한 카페를 찾은 각기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의 여행에 대한 추억이 있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이국적인, 생격한 장소로 향하는 행위며, 그곳에서는 당연히 추억거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추억은 지극히 사적이며, 그래서 특별하다. 타인과는 절대 공유될 수 없는 추억이 타인과 공유되는 특별한 카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아직 접하지 못했다면, 나의 추천을 믿어보시고 한 번 시도해보시길.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진짜 이 글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나의 '토포필리아'에 대함이다. 나는, 20여 년 넘게 생활해왔던 고향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생활 중인 이방인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아직도 나는 부산이 그립고, 서울 생활이 썩 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생활상에서의 힘듦보다는, 그냥, 왠지, 낯설다. 솔직히 일과 커리어. 이것 하나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감성을 풀고 애틋한 추억거리를 만들만한 장소는 아니라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하여, 토포필리아를 가질만한 '나의 진짜 장소'는 부산이다. 이따금씩, 나는 '부산에서 살고싶다'는 말을 자주 꺼낸다. 입 밖으로의 표현이 따금씩이라면,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은 '자주'라고 볼 수 있다. 그냥, 괜히, 힘들때면 부산의 확 트인 해변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해변으로 자주 떠난다. 단지 바다를 좋아해서일수도 있지만, 그 이유들 중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부산에 대한 향수다. 적어도 부산은, 내게 있어서는 공간이 아닌 장소다. 내 심장이 머무는 곳이다. 비록, 몸은 서울 위에 서 있지만.



여하튼, 장소 이야기를 꺼내면 부산은 내게 빠질 수 없는 소재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이라는 책 덕분에, 잠시 추억에, 그리고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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