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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로맨스 <일주일간 친구>

특별하지는 않지만 몰입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진 영화들이 있다. <일주일간 친구>도 그랬다. 이유는, 서정적인 분위기와 우리 모두 한 번은 겪었던 학창시절의 한 때를 그렸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면면에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요소들이 배치돼 있다.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이다.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는 하세 유우키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다 후지미야 카오리라는 동창생의 대출증을 줍는다. 이것이 둘의 첫만남이다. 이후, 유우키와 카오리의 우연한 만남이 한 번 더 이뤄지고, 2학년이 되면서 둘은 같은 반이 된다. 카오리에게 첫눈에 반한 유우키는 친구가 되고자 접근한다. "나와 친구가 되어주세요!"를 되풀이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카오리의 대답은 "안 돼!"였다. 유우키 외의 친구들은 이런 카오리의 생활 방식을 깨닫고 접근 자체를 꺼린다. 거듭된 제안에도 거부당하고 마는 관계. 친구마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카오리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이유는, 그녀가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마다 기억이 리셋되는 카오리. 매주 월요일이 되면 카오리의 기억(추억)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우키는 끈질긴 시도를 거듭한다. 끝내 친구되기를 위해 생각한 유우키의 발상은 '교환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교환 일기에 기록된 추억을 통해 친구 관계를 이어나가자는 유우키의 제안. 현명하고도 순수한 발상이다. 카오리는 고심 끝에 일기 쓰기에 응하기로 하고, 그때부터 둘의 애틋한 관계가 시작된다.



영화는 '제법' 다양한 소재를, 다각도로 다룬다. 단순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아닌, 기억과 추억, 그리고 상실에 대한 다양한 소재를 통해 감상자들에게 사색의 여지를 선사한다. 먼저,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유우키의 열정에 크게 반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지고지순한 사랑은 누구라도 칭찰할 만하다. 절대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상대에게 끊임없는 노력을 가해 마음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는 스토리는, 우리 모두의 희망 사항인 동시에 기대에 부흥하는 결과다. 이것 하나라면, <일주일간 친구>는 그저 그런 러브 스토리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기억'이라는 소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또한 그 기억을 추억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다양한 경험들은 다양한 추억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아픈 경험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주춧돌이 되기도 하지만, 트라우마로 남아 끊임없는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화에는 기억을 가진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가 등장한다. 우리는, 기억을 잃어가는 캐릭터를 연민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카오리와 같이 생각만 해도 두통이 찾아오는 경우의 고통을 겪었다면 그 기억 정도는 잊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병을 갖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나쁜, 그리고 이후에 악영향으로 이어질만한 기억들은 씻어 흘려버리는 마음가짐을 갖고 싶다는 뜻이다. 잊을만한 것들은 잊고, 털어버려서 더 이상 아프지 말자는 의미다.



물론, 슬픔은 성장통의 일환이기도 하다. 유우키의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사그라들고 만 사랑탑은 사랑을 포함한 관계의 성장을 도모했다. 어찌됐든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또한, 유우키의 예처럼 진심 어린 사랑은 결국 상대에게 가닿게 되어있다.

이렇듯 <일주일간 친구>는 경험과 타인과의 관계 등의 다각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물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본다면 지금껏 봐왔던 일본 로맨스 영화들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병, 짝사랑 등의 클리셰들이 어우러진 익숙한 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설렜다. 고등학생 시절을 돌아볼 수 있었고, 지고지순한 순정파 소년의 뜨거운 눈물을 보며 울컥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서정적인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에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서정성을 즐기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다소 느리고 답답하지만, 일본 특유의 감수성이 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면 <일주일간 친구>도 꽤 좋게 와닿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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