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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이크메이커>,
이보다 농염할 수 없다


제목만 접했을 땐, 달달한 로맨스물이라 예상했던 <케이크메이커>. 하지만 실체와 만난 순간, '이런 식의 농염한 케이크맛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영화의 시작은 '예상대로' 달콤한 케이크가 등장한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시나몬 케이크를 주문한 남자는 그 맛을 자신의 아내에게도 전하려고 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만한 장면. 하지만 이내 '반전'을 드러낸다.

베를린에 출장올 때마다 같은 베이커리를 찾는 오렌. 그리고 그에게 짙은 달콤함을 선사하는 파티셰, 토마스. 이들은 연인이 된다. 물론,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은밀한 관계다. 이후, 오렌과 토마스는 오렌이 출장올 때마다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하지만, 베를린을 떠나 집으로 향하던 오렌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갑작스럽게 연인과의 작별을 맞게 된 토마스는,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은밀한 관계를 되찾고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연인의 생활에 자신을 내던지는 남자의 이야기.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연인이었던 아내, 아나트가 운영하는 카페의 직원이 될 것을 자처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집 안까지 들어가는 대담함. 물론,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나트와의 관계도 특별해진다. 연인이 몸담았던 생활권에 자신을 투입시키면서 겪는 온갖 시행착오를 통한 자위는, 슬픔과 동시에 아슬아슬한 짜릿함 그 자체다.



토마스의 자위는 '반죽하기'를 통해 드러난다. 묵묵하지만, 충분한 힘이 들어가야만 하는 반죽에는 연인의 상실에 대한 슬픔과 애도, 하지만 묵묵히 비밀을 지켜내야만 했던 고독의 외침이 한데 섞여있다. 또한, 모든 이들을 반하게 만든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역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온갖 감정들을 압축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어두운 초콜릿 빛과 새하얀 생크림의 대조, 그 위에서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체리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메우는 상실과 슬픔이라는 어두운 면과 사랑과 구원이라는 밝은 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토마스는, 모든 이들의 '구원자' 역할을 한다. 오렌과 아나트와 사랑을 나누는 동시에, 오렌의 어머니와 아들에게도 구원자가 된다. 각 인물 모두에게 상실의 대상이 된 오렌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들을 위로한다. 위로 방식에는 달콤한 케이크와 쿠키가 있다. 이 달콤함이, 영화 속 인물들의 위로제가 된다. 물론, 토마스도 음식으로부터 위로받는다.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 일을 중단하고 가족끼리의 시간을 갖는 안식일인 '샤밧'을 맞이해 이웃이 갖다준 음식으로부터 말이다. 영화는 이렇듯 '푸드 테라피'를 통해, 인물들의 잃었던 웃음을 되찾게 만든다.

<케이크메이커>는 절제로 가득한 영화다. 사랑과 상실이 공존하는 달콤쌉싸름한 상황에서의 침묵과 욕망은 몰입감을 드높인다. 달콤쌉싸름함을 넘나드는 이 영화는, 블랙 포레스트의 농염함을 닮아있다.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토마스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케이크메이커는, 여느 영화들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특별한 캐릭터다. 그의 매력에 흠뻑 젖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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