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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델과 어니스트>

한 가정의 서사시

<에델과 어니스트>는,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 가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사실, 작품이 집중하는 주된 인물들은 레이먼드의 부모다. 우유 배달부인 아버지와 가정부였던 어머니가 만나 연애를 즐기는 과정부터 결혼, 레이먼드의 탄생과 그 이후 세 가족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일반적인 가정의 서사시와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레이먼드 브릭스는 어떤 인물인가. 1920년대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오늘날 가장 훌륭한 그림책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참신한 작품들을 통해 브리티시 도서상,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등을 거머쥔 이력이 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림체는 보드랍고 따스함을 지니고 있지만 내용 면에서는 다소 현실적이고 쓸쓸한 면모를 드러낸다. 이 작품관은 <에델과 어니스트>의 원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여, 이 작품은 우리가 생각해왔던 '동화적인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물론, 그림체는 부드럽고 색채는 다채롭다.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충분히 동화적, 그러니까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려한 색의 꽃들은 음울한 현실을 그리는 때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사실, 이 영화의 배경, 그러니까 현실은 절망적이다. 레이먼드의 부모는 노동 계급이었고, 레이먼드가 태어난 이후 전시의 불안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편안함과 긍정성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생기 가득한 꽃들은 에델과 어니스트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물이 아닌가 싶다.

그럼, <에델과 어니스트>는 어떤 영화인가. 한 마디로 '평범'하다. 대개의 영화들이 지닌 (특히, 애니메이션이라면 더욱 더)특별함이 없는 영화다. 장르만 애니메이션이지, 내용만 보자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영화는 당대 노동 계급의 가정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었을 면면을 담아낸다. 우유 배달부 어니스트와 가정부였던 에델이 만나 형편에 맞는 데이트를 즐기고, 조금은 무리해 결혼을 한다. 노력 끝에 아이를 갖고, 자신들 선에서의 최고의 교육을 시켜 레이먼드를 미대생으로 키워낸다. 이후, 아들을 결혼시키고 노인이 된 그들은 세상과 이별한다. 이 얼마나 평범한 우리네 이야기인가! 물론, 우여곡절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1차 대전과 같은 외적 상황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는가. 바로, 화목한 부부 생활이다. 결혼 후,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기적이 아닌 현실의 행복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의 대가로 소박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자식이 하고 싶은 꿈을 이뤄내는 모습을 보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행복들. 넉넉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가짐과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는 우리에게 '참 행복의 의미'를 지긋이 알려준다. 또한, 전개 방식은 어떤가. 물론, 캐릭터들이 실존 인물에 기인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작위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 닮아있기에 더욱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덕분에 관객들은 보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물입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은 꽤 많은 장면들에서 웃음을 쏟고 눈물을 훔쳤다. 이것이 공감의 힘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효과는, 부모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울컥'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그 울컥과 함께 머릿속에는 내 부모의 미래(혹은 과거)가 플레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에델과 어니스트>는 참으로 기묘한 영화다. 특별할 게 없는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내면을 다지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아, 그리고 평범한 가정의 서사시답게, 1900년대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쟁과 문명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 덕분에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신문물과 첫 대면한 이들의 다양한 태도를 지켜보는 재미(말 안해도 이해하리라 믿는다)가 있다.

이렇듯 <에델과 어니스트>는 웃고 울게 만들면서 공감을 자극하는 영화다. 그 외 부부 생활에서 겪는 일상의 갈등들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정치적 관심과 견해, 그 외의 동상이몽에 관한 것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부부가 함께 감상한다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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