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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와인을 소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면, '숙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탄생하는 와인은, 기다림 끝의 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역시 다르지 않다. 영화를 감상했다면, 국내의 제목보다 원제가 더 와닿을거라 생각한다. 원제는 'Ce qui nous lie(우리를 이어주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와인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기고 간 와인 농장이다. 영화는 세 남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 장은, 10년째 고향을 떠나있다. 그러던 중, 둘째 줄리엣으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본가를 찾는다. 막내 제레미는 와이너리와 스파 등을 경영하는 장인의 데릴사위다. 막내인데다, 별다른 힘이 없는 그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다.


10년 만에 재회한 세 남매의 관계는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대면은 그렇다쳐도, 연락조차 제대로 닿지 않았던 그들이기 때문이다. 장은 줄리엣과 연락한 지 4년이나 됐고, 막내는 이에 대한 불만을 마구 털어놓는다. 왜냐.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0년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갔고 막내는 결혼 후 아이까지 낳았다. 물론, 줄리엣과 제레미도 장의 소식을 몰랐다. 장은 호주에서 한 여인과 만나, 아이를 낳았다. 와이너리 운영을 위해 빚까지 진 상태인데다, 아내와의 관계마저 불안한 상태다.



이렇듯, 세 사람은 각자의 문제점을 품고 있다. 물론, 이들 셋의 가장 큰 공동의 문제는 아버지의 죽음이다. 장이 머무르는 사이,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떠난다. 상속세라는 빚까지 남긴 채 말이다. 공동의 과제가 생겨버린 세 남매는 함께 지내는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당장 급한 포도 수확에서부터, 재산 분할 의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세 남매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며 가족애를 확인해나간다.


영화의 전반에는 '애정'이 배어있다.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포도에 대한 애착이 필수불가결하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 간의 우애도 확인해나간다. 특히, 장의 회상 신에서 그 점이 두드러진다. 맏형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억압과 강요만 당해왔다고 생각해왔던 그는, 아버지가 썼던 편지를 읽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부성애를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줄리엣의 도움으로 소원했던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된다. 물론, 이 모든 애정 확인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와인을 만들어지는 데 오랜 기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장과 아내와 대화를 보자.


아내: '처음에 당신이 그랬어. '사랑 이야기에서 최고의 순간은 처음 몇 개월이라고. 우린 그거 지난지 오래고.' 

장: '그렇게 말했지.하지만 떨어져 지내면서 마음이 바뀌었어. 사랑도 와인 같아. 시간이 필요해. 숙성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시간이 지난다고 상하지 않거든.'



그렇다. 사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처음 몇 개월의 열정 가득한 사랑이 가장 달콤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유지하는 것. 즉, 변함 없음이다. 이 변함 없는 사랑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과 소중함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버지를 피해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봐왔던 그가 깨달은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었다.


세 남매를 이어준 것도 와인.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만들어준 것도 와인. 아내와의 사랑을 깨닫게 만들어준 매개체도 와인이다. 오랜 시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하는 와인. 이렇듯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와인을 통해 농후한 인생의 맛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사실, 와인을 소재로 다룬 이와 비슷한 영화들은 많고, 그래서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전개 방식 또한 고전적이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우리 모두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것. 이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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