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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관부재판을 아십니까?


<허스토리>는 제목처럼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다.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위안부와 정신대 할머니들의 관부재판 실화를 다뤘다. 영화에 대해 '또 위안부야?'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직 완전히 해갈되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계속 언급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관부재판'이란 무엇인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을 오가며 23번 이뤄진 재판을 말한다. 10명의 원고단과 13명의 변호인이 뭉쳐, 일부 승소를 이끌어낸 굳건한 역사다. 치욕과 아픔에도 무릅쓰고, 자신들의 과거를 내비치며 재판에 당당히 맞섰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슬픔과 동시에 위대함을 전한다.



<허스토리>는 상업성과 정보성 모두를 아우른다. 관부재판의 존재 여부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중요한 역사를 알리는 정보통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과정은 고리타분하지 않게 꽤 잘 극화됐다. 물론, 소재만으로도 아픔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할만하지만, 그것을 온 마음으로 표출해낸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와닿는 강도가 더욱 짙었다.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재판. 자신의 과거를 되돌려놓고 싶을 만큼, 찣기고 쓰라렸던 과거를 지닌 여성 국가 대표들의 한(恨).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면 함부로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아픈 역사의 '잘못'은 반드시 사과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가히 굳세다. 여행사 사장이자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의 리더인 여장부 스타일의 문정숙은, 이 재판을 이끈 인물이다. 자신밖에 모르고 살았던 그녀가 이 일에 뛰어든 이유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부끄러워서'였다. 그녀의 말은, 과거의 아픔은 모른 채, 그리고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는 피해자들의 상황은 모른 채 이기와 탐욕에 휩싸여 살아가는 이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실제로, 영화 속에는 그녀들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재판장에서의 일본인들의 야유가 그랬고, 위안부 할머니 배정길의 아들도 '더러운 손'이라며 어머니를 나무라고, 택시 기사까지도 위안부 사건을 불결하게 대한다. 영문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끌려가 온갖 박해와 고문을 당해왔던 그녀들은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즉, 이 사건은 과거에만 남겨진 것이 아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영화 속 인물들은 온갖 심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온 몸에 새겨진 상처들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문신이다. 평생 남 앞에 드러내지 못하고, 철저히 혼자만의 고통을 안고 살아왔던 그녀들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 아팠다. 더군다나, 재판의 취지에 대해 "돈을 받고 몸을 팔아놓고 이제 와서 보상 받겠다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낸다"며 왜곡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울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결국, <허스토리>의 관람 포인트는 이것이다. 아픈 역사의 피해자와 희생자들의 아픔을 왜곡된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애도하자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보여지는 피해자들의 진술은, 보는 이들이 가슴을 찢어놓을 정도로 아프다. 한 순간도 행복할 날이 없었던 생지옥을 견뎌내야만 했던, 그리고 그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인간미는 고통과 감동을 아우른다. 아무튼, 너무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허스토리>가 흥행을 예고하는 이유들 중 하나로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겠다. 김해숙, 문숙, 예수정, 이용녀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여전히 탁월(특히, 이용녀의 감초 역할은 영화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했고, 이전 필모그래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색다른 캐릭터를 입은 김희애의 연기도 훌륭했다. 이 영화는 소재 면에서 신파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데, 이 부분을 줄이고 상업성을 가미해낸 민규동 감독의 역량도 돋보였다.


가족과 함께 보면 좋을만한 영화 <허스토리>. 몰랐던 역사를 알아가는 동시에 가슴 묵직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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