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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가렛>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과연 우리는 당당하게 비난할 수 있을까?

영국인은 자신의 도덕훈련장을 위해 세상이 만들어진 걸로 여긴다.

ㅡ 버나드 쇼 어록


신은 아이들이 파리를 다루듯이 우리 인간을 다루고 있어.

신은 인간을 장난 삼아 죽이지.

ㅡ 셰익스피어 글로스터



영화 <마가렛>에 등장하는 명언들이다. 위의 글들은 주제를 압축하는 동시에 감상자들을 성찰하게 만든다. 영화 속, 학생들은 위 명언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하나의 답, 즉 어른으로서 걸어야 할 '현실적인 길'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데 주력한다.


교수의 가르침대로라면 우리는, 신의 장난에 당하고 마는, '운명'이라 일컬어지는 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에 그칠 뿐이다.


<마가렛>의 주인공 '리사'는 카우보이 모자 구매를 위해 거리를 헤매던 중, 자신이 찾던 모자를 착용한 버스 운전기사를 발견하게 되고, 그에게 말을 건다. 마가렛과의 소통 도중 신호위반을 한 기사는 대형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한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그리고 리사는 사고현장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지만, 법정에서 버스기사의 과실을 은폐하며 거짓 진술을 한다. 시간이 흐른 후, 리사는 여자의 죽음에 자신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후, 리사는 거짓 진술을 번복하고 버스기사를 해고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한다.



아직 큰 사건에 휘말려본 적도, 스스로 사회적 문제와 접촉해본 적도 없는 리사.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어떠한 '책임의식'을 갖게 되고 개인의 '양심'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마가렛>은 다분히 '상징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영화의 전체적 맥락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가령, 시험 볼 때 컨닝한 사실에 대해 리사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되레 리사는 시험의 형식이 '오픈북'이지 않았냐며, 교수에게 화를 낸다. '어차피 오픈북인 시험'이라는 것은 '어차피 답안이 짜여진 사회'를 뜻하는 것. 그랬던 그녀가, 윤리를 요구하는 상황과 직면하면서 짜여진 사회(오픈북)의 부조리를 깨달아간다.



정해진 무대(사회)에서 타인의 시선(관객)을 의식하며 '연기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엄마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리사. 부조리한 사회와 마주한 그녀는, 올바른 윤리관과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만 사회는 예상했던 것보다 각박하다. 각박하고 막막한 사회를 바꾸겠다는 한 개인의 정당한 외침은, 결국 무력해지고 만다.

결국, 마가렛 그녀도 '순응자'가 되고 만다.


영화 <마가렛>은 한 소녀의 성장영화다.

하지만 주인공의 도달점이, 많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올바른 선'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차갑고 각박한, 부조리한 현실의 일원으로 입문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악한 현실을 감상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마가렛>은 굉장히 '불편한' 영화다. 하지만, 마가렛과 그녀 주변인들에 대해 심장 한 번 아프지 않고 손가락질 할수 있는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결국 우리는, 신의 장난에 놀아나는 인간의 (본능적)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인가. 물론, 한계를 뛰어넘는 자는 영웅이 될 수 있다. 허나, 대부분의 우리들에겐 영웅의 자리는 불편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부조리할 수밖에 없고, 결국 우리들도 한낱 부조리한 개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는, 마가렛과 주변인들, 닥친 사건을 비난하자는 것이다. 사회의 민낯을 마주함으로써 스스로를 반성하자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를 압축하는 詩]

마가렛, 너 울고있니?

잎새지는 황금숲을 보았구나.

너는 사람들이 아끼는 물건들처럼, 잎새를

신선한 마음으로 아낄 수 있지 않니?

아! 가슴이 늙어갈수록

그런 것에 무심해 진단다.

그러다 보면 한숨조차 없어져.

희미한 숲이 온통 떨어지는 낙엽부스러기에 묻혀있어도

너는 여전히 울면서 이유를 알고 싶어 하겠지.

아가, 무엇이라 이름지어도 상관없어

슬픔의 원천은 다 같단다.

가슴이 듣고, 혼이 짐작하는 것들이

입이나 머리로 표현된 적은 없었단다.

슬픔의 원천은 인간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네가 슬퍼하는 것은 바로 그런 운명의 마가렛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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