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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를 그린 영화<스틸 라이프>

현실의 쌉싸름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견뎌내기 힘든 일상인데 왜! 굳이! 영화관에서조차 암담한 현실을 봐야하냐'고 묻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고 보는 필자는, 이러한 영화들을 즐겨 본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고, 타인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 거기에서 빚어진 소통의 부재를 다룬 영화들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OS와 연애를 하고 영원한 관계유지를 위해 기계 속 알고리즘에 의존하기도 한다. 휴머니즘이 결여된 사회, 차단된 타자와의 관계는 외로움으로 이진다. 이 외로움을 고독으로(외로움과 고독은 엄연히 다르다!) 잘 소화시키는 이라면 문제될 리 없겠지만, 우리의 대부분(사실은 모두)은 사회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타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적어도 가족과는 이별할 수 없는 게 우리 인간이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더욱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조차 가족이 없다면 더욱 슬플 것이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슬프다(물론, 죽음 이후에 본인은 감정을 가질 리 없겠지만). 죽음과 마주한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알릴 수 있는 사람조차 없다면, 그들의 감정은 외로움 그 이상의 '참담함'일테다. 삶의 끝에서 느끼는 참담함은 더욱 냉혹할 것이다.


영화<스틸 라이프>의 소재는 '고독사'다. 고독사를 겪게 된 이들의 장례를 해주고 지인들을 찾아 초대하는 직업을 지닌 존 메이는 고독의 아이콘 그 자체다. 홀로 생활하며 홀로 죽은 이들의 끝을 지켜주는 그는 어쩌면 고독한 삶의 최후를 맞은 이들의 진정한 친구(가족)가 아닐까. 우리네 인생이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라지만, 이 '홀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비참한 언어다. <스틸 라이프>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있다. 외로움으로 도배된 사람들의 삶은 정지된 것과 다름아닐 것이다.



온통 외로움으로 뒤덮인 <스틸 라이프> 속 인물들이 처량하게 느껴지겠지만, 과연 우리의 삶이 그들과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무채색으로 뒤덮인 영화의 배경, 홀로의 삶에 익숙해진 존 메이, 홀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타자와의 소통 부재 등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하는 풍경들이다.


이웃의 죽음을 위해 그들의 가족 및 지인들을 불러모은 '위대한 그날'에 벌어지는 참담한 사건! 하지만 진정한 친구들을 둔 존 메이의 먼 훗날은 행복하리라 믿는다. 우리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을, 그리고 친구와 이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생의 마지막에까지 외로움과 씨름하지 않는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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