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위한 소비?

집착이 괴로움을 낳고 마음의 병이 된다는 것은 그 집착하는 바가 비록 새우젓 꽁다리 같은 하찮은 거라 해도 변함없는 진리가 아닐까.
이런 U턴 현상과 함께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점점 시들해지다가 이제는 짐스러워서 맨날 장만하기보다는 없앨 궁리부터 하게 된다. 노망이라기보다는 이제야 조금은 지혜로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일용할 소모품 외의 물건 장만을 거의 안 하고 산 지는 이십 년도 넘는다. 안 하는 대신 버리지도 않아서 요번에 오랜만에 이사를 하려고 들춰내니 그 분량이 엄청났다. 내 생전에 다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 또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 아름답지도 기능적이지도 않은 주제에 공간이나 많이 차지하는 옷장들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끼고 살던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안 버린 것도 결코 미덕이 아니었다. 진작 버릴 마음을 가졌더라면 남들이 갖다가 이용할 수도 있었으련만 지금은 아무도 안 거들떠볼 순전한 허접쓰레기였다.

- 책 <노란집(박완서 저/열림원)> p. 116에서




얼마 전, 내 엄마와 나눴던 대화와 일맥하는 글을 책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버리는 것의 중요성을.

사실, 나는 소비를 그다지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 집에 물건들을 끌어와서 장식하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닌지라 이사를 할 때도 가구 정도만 사는 편인데, 이제는 가구에 대한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거울과 탁자가 있으니 화장대가 그다지 필요 없고, 책상도 굳이 방마다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가구가 더, 혹은 덜 필요할지는 생활 습관에 따라 달라질 것. 한데, 무조건, 내게 필요한 가구는 옷장과 책장이다. 어찌됐든 매일같이 입어야 하는 옷과, 죽어도 놓지 않을, 그리고 놓지 못할 책들을 보관할 만한 가구와 공간은 꼭 필요하다.

책의 소비도 예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지식에 대한 갈증(욕망)이 끊임없었던 20대 때는, 좋아하는 작가나 흥미로운 책(한 문장에 꽂혔다거나, 표지 디자인이 예뻤다거나 등)들을 무조건 구매하고 보는 타입이었다. 한데, 지금은 두, 세 번 다시 읽을만한, 혹은 소장해뒀다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빌려줄만한 책들만 구매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중고서점에 되파는 책들이 너무 많았기(70에, 그 이후부터는 웬만하면 읽고 싶은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곤 한다.

생각해보면, 사용 이후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주 작은 일례로, 편의점에서 패트 용기에 담긴 커피 하나를 사 먹어도 버려지는 쓰레기는 재활용, 일반 쓰레기 두 종류나 나온다. 이 예는 확실한 쓰레기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 라고 예민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가 겪었던 소장 중이던 책 70% 정도를 되팔았던 경험과 비슷한 사례를 한 번쯤은 겪어봤을 테다. 물론, 미술품이나 희귀품들을 구매해 아주 잘 보관하여 재테크 명목으로 누군가에게 판매 혹은 기부하여 수익이나 명예를 거머쥐는 경우는 아주 좋은 예이지만, 대부분은 이와는 달리 폐기를 위한(?) 구매를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 버리는 건 쉽나. 버릴 때도 대형 폐기물의 경우에는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고, 단순히 버려지는 쓰레기들도 종류별로 구분해야만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런 후일을 간과하고, 우리는 1차적인 이유 때문에 너무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글을 적고 있는 나라고 해서, 무소유의 삶이나 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현명한 삶의 행보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욕을 버린 건 꽤 오래 됐다.

작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함께 유품을 정리했다. 엄마는 그때, 할머니 당신의 생애 아낀다는 이유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고이' 모셔둔 수많은 것들을 버리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강하게 했다고 한다. 나같은 경우엔, 20대 후반부터 관심 있었던 '죽음'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자는 물건을 사면서 허기진 마음을 채운다고도 말하지만, 나는 솔직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나는, 선물받은 것들도 소모품이 아닌 이상은 잘 확인하지 않는다. 내게 가장 좋은 선물은 절실히, 혹은 습관적으로 꼭 사용해야만 하는 생필품 같은 것들이다.

어찌됐든 나는, 인용한 글에서의 작가의 의도를, '소비가 집착의 산물이고, 소비를 할수록 집착의 크기가 커진다'라고 해석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내 생각에 가장 큰 구매 시 위험 기준은 '유행을 좇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의 유행은 너무 빨리 바뀐다. 그렇기에 유행을 좇으면 너무 잦은 소비를 해야 하고, 유행에 너무 민감한 사람들은 유행이 지난 물건들을 옛것이라 여겨 쓸모 없다고 판단해버릴테다. 그러면 결국 그것들은, 고이 모신 쓰레기가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혜가 쌓여가면서, 물건의 소비는 줄어간다고 하니, 어떤 방향이 옳은 것인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격한 공감을 선사한 박완서의 글은, 이렇게 나를 공감으로써 감동하게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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