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속의 '오만'과 '편견' 중, 오만은 본문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고 편견은 인물들에 배어있는 단어다. 이 소설은, 오만과 편견을 지닌 젊은이들의 로맨스와 결혼을 그려낸다. 결혼으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내는 이 작품에는,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 내면 또한 복잡미묘하다. 그만큼 섬세한 작품이라는 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연애 역시 복잡하다. 단 한 명과 나누는 사랑이지만, 매일, 아니 매 시간, 매 분, 매 초 감정선이 변한다. 타인의 말 한 마디, 작은 몸짓 하나에도 심경의 변화는 롤러코스터처럼 변화무쌍한 파장을 그린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어렵다고 말하고, 심지어 연애를 시작하는 것마저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기저에는 다양한 '조건들을 따지려드는' 연애에 대한 태도가 깔려 있다.
무려, 200여 년 전 소설인 <오만과 편견>에도 이 '조건'들을 중심에 둔 연애와 결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작품의 메인 테마는 결혼이기 때문에, 조건이라는 것에 좀 더 몰두하는 기색이 비친다. 지금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극심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조건'만' 좇아 결혼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소위 조건이라고 말하는 가문과 재력에 눈 멀어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개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관, 즉 '결혼관'이라는 것이 있을진대, 소설 속에서도 조건만 따지려 드는 집단과 사랑에 도취된 집단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러니, 복잡하다는 거다. 결혼은 신중해야만 한다. 온갖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함께 헤쳐나가야만 하고, 늘 행복할거라는 보장도 없는 가족 의식을 선언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결혼의 조건'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엄마, 베넷 부인처럼 가문과 재력 따위의 '눈에 보이는 조건'을 좇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리디아처럼 사랑을 좇는 것이 좋을까. 결혼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한데, 이는, 베넷씨의 딸들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결국, 미모와 지성을 두루 겸비한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눈에 보이는, 사회적 조건들을 훌륭히 갖춘 남자들과 결혼한다. 그렇다면, 남자들의 기준에서 결혼 대상의 '조건'은 미모와 지성일까.
<오만과 편견>은, 섬세한 소설답게 남과 여, 신분과 재력, 미모와 성격 등 다양한 인간의 요소들을 토대로 로맨스와 결혼을 이야기한다. 이 요소들보다 더 복잡한 것이 감정이기에, 인물들을 끊임없이 오만과 허영을 뽐낸다. 어차피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은, 직접 겪거나 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관계의 숙명이다.
어찌됐든, 소설을 토대로 보면 '오만'은 그다지 좋지 않은 의미로 '줄곧' 그려진다. 작중 메리가 했던 말처럼, 오만은 가장 흔한 결함이다.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중략)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제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그렇다면, 오만은 충분히 자'긍'심이 될 수 있다. 다아시의 행동을 오만, 혹은 허영이라는 '편견'에 가두었던 엘리자베스 등의 인물들이 그를 '자긍심'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오만은 누군가의 편견(시선)에 있어서는 충분히 가져도 될 '권리'로 판단지어질 때도 있다.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이, 다아시를 두고 했던 말이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니까. 가문이며 재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잖아. 이런 표현을 써도 좋다면, 그분은 오만할 권리가 있어."
이렇게 개인의 행동 혹은 정신은, 타인의 편견으로 인해 충분히 그럴만해도 되는 자격이 될 수도 있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아, 정말 복잡하다. 하지만 어찌됐든, 작중 가장 '시끌벅적'했던 인물들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혼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들은 누군가의 편견에서는 꽤나 오만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자기 주장이 강한, 어디에서든 당당한 인물들이었던 거다(이 판단 역시 나만의 편견에 의한 것이다).
결국, 가장 성공적이라 보이는 결혼을 한 인물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뜻을 잘 표현하는 당당한, 한 마디로 '자긍심'을 갖춘 인물들이었고, 그들을 한편으로는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배려심도 한껏 베푼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결혼 아니겠는가. 엘리자베스의 입장에서는 가문과 재력을 갖춘데다, 오만을 자긍심으로 끌어올린 다아시와 결혼하여 신분 상승을 할 수 있게 됐고, 다아시 역시 엘리자베스와 같이 신 여성상을 만나 '오만하다는 편견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사실, 소설이 시작될 때는 제인과 빙리가 최고의 커플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리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끌어갈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커플이 최고다. 둘은, 각기 떼어놓고도 멋있고 짝으로서도 훌륭하다.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생각들 때문에 수십 번의 편견을 오갔다.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어떤 경우에는 어떤 이의 말에 공감했다가, 이내 다른 이의 생각이 맞은 것 같아 쉽게 배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마치, 독자가 작은 마을 속 주민이 된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만의 풍자와 위트는, 긴 작품 길이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역시, 명작은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여러분은 어떤 결혼을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어떤 인물에 호감을 느꼈는가. 나는 단연코 엘리자베스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