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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진짜 사랑한다면?

영화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

반려동물과 함께인 분들이라면, '꼭' 감상하길 권하는 영화다. 반려동물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은, 병으로 반려견 나츠를 잃은 영상 감독 카나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나츠를 잃은 후,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카나미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반려견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후 그녀는, 유기견 보호센터와 안락사를 행하는 곳,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등 개와 고양이들이 떠도는 곳과 그들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사람 등을 직접 취재하면서 영화의 장면들을 수집해나간다.



유기견 보호센터의 현장은, 안타까움과 슬픔 그 자체다. 센터 관리자들이 데리고 온 개와 고양이들은, 일주일 간 보호를 받다가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된다. 일본에서는, 맡아줄 주인이 없는 동물들은 안락사시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강행해야만 하는 것이 실정이다. 이 참담한 상황은, 개와 고양이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충격'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장 잔인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반려동물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로 그들을 '물건 취급'하기 일쑤다. 돈벌이 수단으로 무차별 번식을 시키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근친 성교로 극심한 장애를 갖고 태어난 개들은 버려진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땐, 가족인 반려 동물들을 귀찮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버려두고 자신의 목숨만을 건진 이들이 많다. 키울 여건이 안 되면, 반려 동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단지 외로움을 달래줄 존재, 내가 볼 때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이들은 계획 없이 반려 동물을 '사들인다'. 이 '사들이는' 것 역시 '문제'의 시작이다. 반려 동물을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펫숍으로 향하기 때문에, 동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악덕인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앞선 모든 '폐해'를 낱낱이 보여준다. 그리고, 동물보호센터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변화되어가는 사회를 스케치하면서, 반려 동물의 '참 의미'와 그들을 대하는 태도,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자는 메시지에까지 도달한다. 실제로, 영화의 말미에서는 '진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하여금, 안락사되는 동물들이 줄어가고 있다는 기쁜 실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언급될 것 같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중 가장 슬펐던 대사는, 구조대 무로이가 개공장에 있던 개를 쓰다듬으며 했던 "감정을 갖고 있어봤자 좋은 게 없으니까요"였다. 버림과 학대를 받은 동물들은, 감정을 가지면 살아갈 수 없기에 감정이 무뎌지고, 나아가 잃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상황은 인간에게도 대입해볼 수 있겠다. 퍽퍽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휴머니즘'이라고 일컫는 감정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도처에 발생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피해자가 되고 마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다. 충분히 나와 내 주변인들이 겪게 되는 사고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우리가 반려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헬 조선'이라 불리는 이 사회는, 예전보다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는 이기심에 앞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결단의 기준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만 있는 경우가 많다.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에 대한 연민은, 확장 해석해보면 결국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들이다.


이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을 되새겨본다면, 우리는 반려 동물을 선택할 때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개와 고양이들은 주인을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버려지는 것에서도 그들은 선택의 권리가 없다. 동물이 제 아무리 주인을 반려인으로 생각할지라도, 주인 의식 없는 반려인이 그들을 포기한다면 관계는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학대다. 되짚어봐야 할 것은, 반려 동물의 포기는 그들을 '죽인다', 즉 '살생'이라는 점이다.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은, 반려 동물들에 대한 태도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강단 있는 영화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카나미가 방문하는 곳들에서 발견한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 과정에서 카나미도 과거를 회상하며 반성한다. 옛 남편에게 털어놓는 말에서, 그녀는 한층 더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나츠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온갖 병원을 전전하며 수술을 감행했지만 결국 한 달 뒤에 죽고 말았다. 당시의 카나미는 그것이 나츠를 위한 일인 줄 알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은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한, 이기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조금 더 나츠와 함께 하고 싶어서, 정작 수술을 받는 나츠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은 채 그렇게 온 몸에 칼을 댄 것이었다. 그렇게 나카미는 개를 위한 영화를 찍어나가면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관찰해나가면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조차도 눈물을 훔치게 만든 매력적인 작품이다. 특히,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개와 고양이 수용이 가능한 실버타운을 봤을 때는, 애잔함과 사랑스러움이 뒤섞인 복합적인 눈물이 흘러 스스로도 놀랐다.



반려 동물은 가족과 다름 아니다. 우리에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면모를 보여주는 그들은, 물건이 아닌 생물이다. 우리의 섣부른 선택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을 보며 마음 속에 새기길 바란다. 잘 알지 않는가.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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