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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스퀘어>, 이런 아이러니!

누가 크리스티안을 쉽게 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왜 언행불일치를 생활화하는가. '바르게 살자'고 다짐하건만, 정작 행동은 이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이상과 현실은 이토록 다르다. 영화 <더 스퀘어>의 주인공 크리스티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자는 취지의 '더 스퀘어'라는 전시를 준비 중인 현대 미술관 수석 큐레어터 크리스티안의 인터뷰로 시작되는 영화.



인터뷰, 그러니까 '말만 들으면' 그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 준 공인 정도로, 미술계에서는 꽤 잘 나가는 그.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여인을 도와주려다 지갑과 휴대폰, 조부의 유품을 소매치기 당한 것이다. 화가 난 크리스티안은 도둑이 머물 곳이라 추정되는 인근 이민자 주택가에 협박 편지를 써서 돌린다. 운 좋게도 소지품은 되돌려받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건들이 연이어지면서 그의 발목을 잡는다.


크리스티안이 협박 편지를 돌린 장소는 정확한 근거 없는, 추정과 편견에 의한 행동이다. 준비 중인 '더 스퀘어'를 소개하면서 타인에 대한 신뢰와 돌봄을 강조하던 그의 말(이상)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그다. 폭력(소매치기)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억측으로 익명의 다수에게 폭력을 가한 그는 작은 차 사고로 한 방 먹는다. 이윽고, 무고한 어린 아이가 협박 편지로 인해 피해를 당했다면서 사과를 요구해오면서 크리스티안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간다.


한편,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인터뷰어와 하룻밤 잠자리를 갖는가 하면, 직속 부하에게 사적인 일에 동참시키는 등 공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각을 벌인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의 행동에는 사소한 폭력들이 스며들어 있다. 신뢰와 돌봄을 강조하면서, 난민과 빈민들에게 작은 도움조차 주기를 꺼리는 등 말과 다른 행동을 일삼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크리스티안이 도움을 청하고 받는 인물들은 거리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풍경들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표하고 그들을 돕자는 말과는 달리, 그들을 냉대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사람들. 최소한 '더 스퀘어'라는 공간 내에서만큼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것들이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지울 수 없다.이 웃을 수 없는 상황은, 크리스티안의 경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지목된 이 사람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직, 간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상징성이 다분한 <더 스퀘어> 속 동명의 전시는, 작은 사회를 상징한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을 상징하는 지정된 사각 공간 속에서는, 온갖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 도와달라 손 벌리는 이들에게 선뜻 손 내미는 이들은 없다. 정작 취지를 입 밖으로 내 건 인물도 실 생활에서는 좀처럼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력을 부정적으로 행사하는가 하면, 실수든 고의든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얼버무리기에 급급한 행동 역시,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크리스티안에게 손가락질을 했는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냥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그의 일상이 우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며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념)은 갖고 있지만, 정작 실 생활에서 사회적 약자와 빈민들을 보면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더 스퀘어>의 매력이다. 올바름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그러지 못 하는(아니, 안 하는) 우리들은 분명, 이 영화가 불편하게 여겨질 것이다.


<더 스퀘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퀀스는, 미술관 내 난동과 크리스티안의 기자회견 장면이다. 미술관 소동 시퀀스는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가해와 피해의 전복을, 크리스티안의 기자회견 시퀀스는 자신이 진행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자신이 무차별 공격과 온갖 책임을 떠안게 된 피해를 통해 '진짜 폭력'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며 계속, 되뇌었던 단어는 '아이러니'이다. 이상과 행동의 극명한 대조를 몸에 입고 살아가는 한 인물을 통해, 우리의 현 상황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 타인의 행동을 지적하지만, 정작 지적질한 자신도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 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이 또 어디있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으로 깊은 감명을 선사했던 루벤 외스틀룬드의 <더 스퀘어>는 201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다. 우리는 결코, 크리스티안의 사생활을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하다. 만약, 손가락질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면, 과거에 흠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감독은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의 인간애가 발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인간성을 거쳐야 합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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