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이름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색채 가득한 인물들과 함께였지만, 어느 순간 이별을 경험하고야 마는 색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설이다.
현재 다자키 쓰쿠루는 서른여섯 살의 역 설계직을 맡은 엔지니어다. 그의 이름에는 색채 대신 '만든다'는 의미가 배어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릴 때부터 '형태가 있는 것을 만드는 것'에 능했고, 지금도 그와 같은 맥락의 일을 하고 있다. 형태가 없는 것, 그러니까 철학 같은 것에는 소질이 없다. 더하여, 타인과 뚜렷한 관계의 색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런 그에게, 진심으로 사랑할 만한 대상이 나타났다. 두 살 연상의 여행사 직원 사라다. 그녀는, 쓰쿠루에게 씻지 못할 과거사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에게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라고 권하며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하여, 쓰쿠루는 과거에 자신을 괴롭혀왔던 인연들과 영문 모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향 나고야와 먼 나라 핀란드까지 이동한다.
쓰쿠루를 괴롭힌 것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자신을 외면해버린 사건이다. 자신과 두 명의 남녀가 어우러진 다섯 명의 그룹은, 그야말로 마치 하나인 것처럼 투더운 관계를 이어왔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서 스쿠루는 고향을 떠나 도쿄로 향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향한 쓰쿠루는 그렇게 서서히 그룹원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이 관계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니다. 분명,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다자키 쓰쿠르는 그것을 밝힐 생각을 하지 않았고, 버림받았다는 괴로움 때문에 스스로를 죽음 속에 밀어넣으려 애썼다. 약 1년여 간 그는, 죽지 못해 발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 하여, 살도 많이 빠지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재의 다자키 쓰쿠루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 명의 남자는, 그렇게 과거를 죽이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형태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 관계는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젠, 관계도 만들어나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난생 처음 진지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 무형태의 것을 쌓아나가기 위해서는, 무너진 무형태의 원인을 찾아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다자키 쓰쿠루는 잊고 싶은,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하나 둘 씩 만나게 된다.
과거를 밞아나가는 과정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시로라는 친구가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다는 소식이다. 이 죽음에 대한 의문을 안고, 옛 친구들을 찾아 나서면서 쓰쿠루는 그들의 현 생활과 과거의 비밀에 대해 하나 둘씩 알게 된다. 물론, 과거사를 듣는다고 해서 현재 달라질 상황은 아무 것도 없다. 시로가 부활할 것도 아니며, 옛 친구들과 다시 친밀해질 것도 아니다. 이들이 다시 뭉칠 확률은 거의 없다. 뭉치기는 커녕, 재회도 가능할까 말까한 실정이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활동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한 남자의 일화로부터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자키 쓰쿠루는 평생동안 과거사의 원인이 자신에게만 있을 것이라는 자괴감이 휩싸여 살아갔을 테니 말이다.
과거, 가장 끔찍했던 경험을 상기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잔인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거쳐야만 보다 성장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 파악이 우선시 되어야만 한다. 원인을 진단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과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이다. 다자키 쓰쿠루가 경험한 고통과 아픔은, 순례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회복돼 나간다. 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소설. 덕분에 나 역시, 지난 날들을 회상할 수 있었고, 또한,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처럼 과거의 친구들과 재회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친했다가 틀어진 관계에 놓여버린 친구들과 재회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우리는 그렇게 몸서리치고 눈치 보기에 바빴던 것 같다. 사실, 친구가 전부이기도 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삶의 활력소다. 이렇게 우리는 형태가 없는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더하여, 가져야 할 마음가짐 하나. 타인과의 관계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 그렇기에, 흘러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이름에 색채가 없는 중립적인, 더불어 편안한 인상의 다자키 쓰쿠루. 그의 앞으로의 삶에서는 다채로운 색채가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책 속에서]
그것은 그가 일본에서 늘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립감이었다. 이거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하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고립의 이중 부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방인인 그가 여기서 고립된다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인 일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신은 정말 올바른 장소에 있는 것이다. - p. 307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죠." 올가는 그렇게 말했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쓰쿠루는 와인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남에게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것 역시 너무 어렵다. - p. 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