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산문집은 애정하는 작가의 것만 골라 읽는 편이다. 수많은 산문집들이 쏟아지지만, 특별히 감명 받은 기억이 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정하는 작가의 것은 그(혹은 그녀)의 삶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작가 자체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여느 작가들의 것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팬심이다.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애정 같은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SNS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누군가가 올린 한 페이지의 글이 인상적이어서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었다. 덕분에, 저자 박준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시인이고, 이 책 이전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을 냈었다. 아직, 전작은 읽지 않은 상태인데, 도서관에서 훑었을 때 큰 감흥이 없어 대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산문집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줄곧 해오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각박해지는 인간 관계. 공감 코드가 있어야만 대화도, 친밀도도 생기기 마련인데, 한 해가 흐를수록 깊고 진솔한 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감정이 있고, 이 감정을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감정의 덩어리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친한 관계, 그러니까, 가족, 친구, 연인이 있다한들, 그들에게 나의 속내를 훤히 보여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와 순도 높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희비를 온전히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산문집은, 위 결핍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 이는, 서점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에세이, 산문집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베스트셀러 자리를 석권한다. 하나의 소재와 정해진 캐릭터들로 몇 백 페이지를 밀고 나가야만 하는 소설과는 달리, 산문집은 다양한 소재의, 그리고 한 소재에 길어야 5페이지 안팎의 분량 정도가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접근성이 쉽다.

사실, 한 권의 산문집 내의 '모든 소재의 글'이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 책 한 권을 '좋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단 하나의 소제목 아래의 글이 마음에 들어도 '인생 책'으로 꼽힐 확률도 있다. 왜냐, 이 책이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내 사정을 이해해줬고, 위로해줬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산문집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여느 친구들보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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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 대한 솔직한 평은, 음. '작가의 일기장' 같았다. 이유는, 여느 작가들보다 박준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꽤나 솔직하게, 보다 1인칭 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 옛 연인들과의 여행길 등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그렇다고 이름까지 밝히진 않았지만, 에두르는 식의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마냥 손발 오그라드는 글만 적지도 않는다. 물론, 느끼하고 부담스러운 글도 있지만, 냉철한 글들도 많다. 한 명의 작가가 적은 게 맞는지 착각할 정도로 오글거림과 현실 반영적 글의 온도차가 크다. 미루어보건대, 작가는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글 일부를 옮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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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 두 얼굴, p. 17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p. 19

'증상과 통증은 이제 미병이 끝나고 우리 몸에 병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장기와 기관들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위통이 시작된 후에야 위가 여기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픈 곳은 허리인데 손발이 먼저 저려올 때 온몸의 신경이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서도 다시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앓는다.' - 몸과 병, p. 45~46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 고독과 외로움, p. 51

'여전히 나에게 믿음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중에 가장 추상적이고 아득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 추상과 아득함은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상대가 배신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보다는, 믿음이라는 나의 감정이 언젠가는 닳고 지쳐 색이 바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온다.' - 마음의 폐허, p. 65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 울음(전문), p. 70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 일상의 공간, 여행의 시간 p. 110

'배가 고플 때 먹고, 고단할 때 몸을 뉘이고, 졸음이 오면 애써 쫓아내지 않고 잠이 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간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해탈과 가장 가까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렇게 참지 않는다면 조금 덜 욕망할 수 있을 테니까. - 절, p. 120~121

이 글들은, 읽으며 공감했고, 또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또한, 잊지 않기 위해, 혹은 다시 꺼내어 읽기 위해 이렇게 옮겨놓기까지 했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일도 없겠지만, 적어도, '함께' 울면 위로의 힘은 커지게 마련이다.

한편,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야기는 '그해 여수'라는 제목의 글에 붙여진 한 장의 포스트잇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리 면상이 상단 중앙에 그려진 귀여운 포스트잇에 새긴 이름(형태도) 모를 이(남성으로 추정)의 글귀. '오글거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몇 번이나 펜 뚜껑을 열었다 닫았네요. 그래도 나중 어느 날 이 쪽지를 다시 펼쳤을 때 미소를 지었으면 해서 글을 남겨요' 하... 사실, 박준의 산문집은 다소 오글거리는 경향이 있다. 한데, 그해 여수는 그 정도가 여느 것들보다 심하긴 하다. 한 번 적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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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수]
그래 밤 별빛은
우리가 있던 자리를 밝힐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눈으로 들어와 빛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 p. 27

그렇다.
이런 글귀에는 '오글거린다'는 표현에 걸맞다. 사랑이 충만한 남녀 사이가 아니라면 도저히 이런 글이나 말을 뱉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 메모를 남긴 이 역시 사랑ing 상태는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만약, 사랑 중에 이런 글을 적었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이 책에는 위 포스트잇만 부착돼 있지 않았다. '꿈방'이라는 제목의 글 마지막 부분에 붙여진 형광 주황색 포스트잇. 거기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도(자연-취소 표시-)한 끗 차이. 이렇게 글에 대한 감상이 적힌 글이 있는가 하면,

또 있다. 기대하시라.
'해남에서 온 편지'라는 소제목의 글 끝부분에 붙여진 핫핑크 색의 포스트잇. 거기엔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되시길. 좋은 글과 함께 마음 넉넉히'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럼, 익명의 누군가가 어떤 글을 읽고 이런 표현을 타인에게 공유하고 싶었는지, 작가의 생각을 적어보겠다.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 p. 69

작가의 글과 그것을 읽은 누군가의 감상을 모두 접한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넉넉한 마음의 누군가와 김치를 씹고 싶구나. 아, 왠지 모르게 겨울 이야기이지만 따듯해. 빨리, 봄이 오길'이라고.

한편,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강원도 영월과 삼척, 그리고 경남 통영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동해 바다를 사랑하고, 고향인 부산인 만큼 경남 일대를 좋아하고 또한 자주 갔다. 특히 통영은, 조부모와 부모의 고향이 경남 고성이라, 명절 때마다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친구들과 몇 차례 여행하기도 했던 곳이다. 한데, 작가가 그토록 좋아한다던 봄날의 도다리쑥국을 먹어보진 못했다. 이 맛을 느껴보고 싶어서라도, 봄날, 통영 바다로 향해야겠다고 '진지하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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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고아'라는 제목의 글 마지막 문단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근대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강을 두고 우리 모두는 고아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꽤 긴 글 속에 포함된 것.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우리 모두, '아직은' 고아가 아닐지라도 저마다 아프고 슬픈 시간을 보내는 중이거나 보냈던 과거가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는 산문집들은 그 어떤 것, 타인들보다도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일, 사랑, 내적 딜레마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이 책으로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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