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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로맨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영화는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꿈 모두 스크린 위라면 충분히, 아니 훨씬 뛰어나게 그려낼 수 있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의 주인공 '켄지'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년이다. 조감독으로 근무 중인 그는, 퇴근 후면 매일 로맨스 극장을 찾아 한 편의 영화를 본다. 본 걸 또 보고, 심지어 대관까지 해서 홀로 영화에 흠뻑 취한다. 그 영화의 제목은 <말괄량이 공주와 쾌활 삼총사>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 말괄량이 공주에 흠뻑 취해있는 켄지는, 어느 날 '놀라운 상황'에 직면한다. 바로, 영화 속 그 공주가 자신의 옆에 나타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설정. 그러니까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 설정은, 시네필들을 열광하게 만들, 시네필이라면 한 번쯤은 상상해봤음직한 상황이다. 내가 동경하던 영화 속 인물이 내 옆에 나타나다니! 이 놀라운 상황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이 비현실적인 설정을 떠올리면 으레 떠오르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다. 동경하던 과거의 인물들과의 만남이라는 판타지. 하지만 이 상황이 비현실임을 알면서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에는, 켄지가 흠뻑 빠져있던 영화 외에도 다양한 고전들의 오마주를 확인할 수 있다. 공주의 모습은 <로마의 휴일> 속 앤의 용모를 닮았고, 그녀가 지긋지긋한 궁전에서 탈출해 새로운 세계로 온 모습은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의 모험과 비슷하다. 한편, <카이로의 붉은 장미> 속 주인공 톰처럼 스크린을 벗어나 자신에게 빠져있는 관객과 만나는 것 역시 고전에 대한 오마주다. 한편, 켄지의 모습은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시네마천국> 속 살바토레와 닮아있고, 그에게 극장을 기꺼이(?) 내어주는 주인은 알프레도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영화에 열광하는 시네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열정과 낭만을 자극하는' 판타지 드라마로 볼 수 있겠다.


자, 그럼 스크린 속 공주와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청년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물론, 당연하게도 쉽지 않다. 영화 속 설정은 애석하게도 참혹하기 때문이다. 공주의 운명은 기구하다. 흑백영화 속 주인공인 그녀는, 무색의 형태로 관객과 만난 것도 모자라 온기가 있는 사람과 접촉하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래서, 슬프게도, 켄지와 공주는 서로를 만질 수 없다. 좋아하고 사랑함에도 손 하나 잡을 수 없다니... 이런 가혹한 현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럼에도 둘의 사랑은 이어진다.


어찌됐든 슬픈 건 슬픈 거다. 그런데, 아름답다. 역시, 판타지가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네 삶에서 환상을 없앨 수는 없다. 여기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큰 몫을 한다. 영화는, 사람들을 꿈 꾸게 하고 기쁘게 만든다. 하지만 스크린을 나서면 우리는 으레 그 꿈에서 깨기 마련이다. 이것이 꿈, 영화의 이중성이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나는, 로맨스적 측면보다 영화의 역할을 알려주는 작품으로 봤다. 물론, 예쁘고 사랑스러운 비주얼도 놓치지 않았다. 색채가 없는 인물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온 몸에 입는 과정은 탄성을 지르게 만들 정도의 비주얼을 자랑한다. 동경과 애정의 대상을 만난 켄지 역을 맡은 사카구치 켄타로의 귀여움은 또 어떤가! 그의 깊은 보조개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자신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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