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살아남은 아이> 리뷰

죄와 벌

*이 포스트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아남은 아이>. 죽은 아들 대신 살아남은 아이와 가까워지는 부부의 모습을 그리는 이 영화에 나는 '죄와 벌'이라는 부제목을 붙이고 싶다.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이 영화는, 전개될수록 소재와 메시지가 풍성해지면서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작품의 소재나 내러티브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부부의 아들 은찬은, 물놀이를 갔던 친구들 중 한 명인 기현을 살리려다 익사했다. 아들을 잃은 부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의로운 아들의 넋을 기리며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남편 성철은, 기현의 딱한 사정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자신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에서 도배직 아르바이트로 채용해 일을 가르치고 생계를 이어가게끔 적극 지원한다. 하지만 아내 미숙은, 남편의 태도가 달갑지 않다. "저 아이만 아니었어도, 우리 은찬이 아직 살아있어!"라며, 기현과 가까이 지내는 성철에게 한풀이를 해대는 미숙. 그녀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실, 은찬이 기현을 구하려다 죽은 거라면 기현의 직접적인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인정하며, 미숙도 기현에 대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럴수록 기현의 마음은 불편해진다. 미숙이 기현을 가까이 대할수록 기현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심지어 도망치기까지 한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후, 가까웠던 세 명의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기현이 은찬이 죽게 된 이유에 대해 자백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믿을 수 없는, 믿기 싫은 사건의 진실은 영화를 다른 국면으로 이끌어나간다.


아들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된 아이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자백했음에도 믿을 수 없는 섬뜩한 사실이기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거들을 모으기 시작하는 부부. 결국, 기현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나고, 그렇게 아이를 잃은 부부는 섬뜩한 작전을 펼친다.


<살아남은 아이>는 진실과 거짓, 죄와 속죄, 가해와 피해 등 대립된 관념들을 통해, 그것들의 경계(잣대)와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죄를 짓고 마음 편히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죗값을 치른다고 해도, 마음 속 깊이 돌덩이처럼 지고 갈 죄책감의 무게는 한편으론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것과 가해자는 반드시 그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즉, 폭력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코드로는 '용서'가 있다. 실질적인 피해자인 은찬의 목숨은 대체 누가 위로하고 구원해줄 것인가.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한 사람의 목숨값을 재단한 기관들은 어떤 가치들을 기준으로 삼았을까. 정작, 피해자는 용서할 수도, 사과받을 수도 없는 상황인데 그를 진정으로 구원해줄 사람은 과연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가족의 애도와 슬픔, 가해자의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살아남은 아이>. 세상엔, 너무 많은 폭력과 그로 인한 아픔들이 많다. 가해자로 등장한 기현 역시,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명의 피해자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 점. 어떤 상황이나 관계에서든, 일방적인 것은 없다는 것. 용서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던 은찬의 부모도, 복수를 하면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비티> 4DX PLUS 3D 관람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