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나비잠>,
인생에 대한 농익은 관점

* 본문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영화 관람 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5월이었다. 교토 여행 중 영화관 전광판에서 만나, 우연히 동행하게 된 일본인과 출연 배우들에 대해 담소를 나눴던 추억을 선사한 <나비잠>. 국내 정식 개봉될 거라는 소식을 접하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영화 한 편이 나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의 반가움. 아마, 한 번쯤은 느껴봤음직한 경험일 테다. 그 반가움과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개봉 당일 관람한 이 영화. 오랜만에 만난 싱그럽고도 섹슈얼한 멜로였다.


주인공들의 관계는 익숙함과 동시에 민망함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베스트셀러 작가인데다, 이혼한 중년 여성 료코와 일본 문학에 빠져 유학까지 온 한국인 찬해의 관계. 국적과 나이, 신분을 뛰어넘은 이들의 로맨스는 쉽게 이해될 만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일어날 수 없다고도 단정짓긴 힘들다. 이유는, 이들이 사랑의 관계를 틔우기 이전에 있다.


료코는 유전에 의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기억을 잃어갈 뿐만 아니라, 건강 상태도 급격히 악화되어가는 그녀는 생애 마지막 소설을 찬해와 함께 써나가기로 한다. 만년필로 써내려가던 작업 방식이 아닌, 자신이 말로 내용을 읊으면 찬해가 받아적는 형태로 둘은 하나의 소설을 완성해나간다. 집필 작업 뿐만 아니라, 료코의 개를 돌봐주고 책을 읽을 수 없는 그녀가 요구한 대로 색깔별로 서재를 정리하는 등 찬해는 힘 닿는대로 기억을 잃어가는 여인을 위해 헌신한다.


그렇게 둘은 동거를 시작하고, 관계는 보다 깊어진다. 사랑하는 이와 무언가를 완성해나간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로맨틱한 상황을 지켜보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특히, <나비잠>의 강점인 감각적인 비주얼은 설렘의 감정을 배가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지독한 사랑일수록 장애물이 크다는 장르적 클리셰에 따라 '이별'로 이어진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남녀는 눈물을 머금고 이별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우리가 바라는 영화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감정은 이어진다.


'사랑의 감정은 무의식을 따라 흐른다. 의식이 사라지더라도 가슴에 새겨진 사랑의 추억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를 보여주는 료코와 찬해의 재회 신(scene)은 익숙한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저릿한 떨림을 선사한다. 료코 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력이 감정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어 놓은 결정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나비잠>은 장애와 각종 잣대를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멜로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삶은 우연으로 이어져 있고, 그 위에서 흔적들을 남기며 인생이라는 여행기를 채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지닌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든 계획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진리. 그래서 우리네 삶은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이다. 료코와 찬해가 만난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고, 그들의 현재 역시 그들의 바람에 의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한 상태와 관계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 이 점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지혜다.


이렇듯 <나비잠>은 사랑을 주 소재로 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의 덕목을 일러주는 다양한 가치들로 얽힌 작품이다. 감각적인 비주얼, 농염한 멜로,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메시지까지 두루 갖춘 이 작품. '농익은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분들께 관람을 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목격자>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