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가면' 없이는 정녕 살아가기 힘든 것일까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요조는 극심한 '인간 공포증'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피곤한 노력(예의 연기-익살-)으로 타인들에게 그는 순수하고 붙임성 좋은 인물로 보여'진다'. 즉, 요조는 지극히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그의 내면은 사실상 타인들의 시선에 비춰지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본질과 현상이 지극히 다른 요조는 술과 모르핀에 중독되고 마는데,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의 연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최후의 '발악'으로도 보여졌다. 의식적인, 계산된 삶을 부러 피하기 위해 그는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을 끌어들인 게 아닐까. 몸은 망가져가지만 어쩌면, 인간에 대한 공포에 허덕이는 것보단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 오염물질(술, 모르핀)들이 아니었을까….
예의 익살로 타인을 즐겁게 하는 요조는 사실상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예의라는 긍정적인 디자인을 입은 요조의 '가면'은 제법 과장되게 느껴지지만 사실상 우리 모두가 착용하고 있는 것일테다. 물론 개인마다 가면의 두께나 표정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타인에게 사랑·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사실은 '본능'이다. 요조의 삶'만이' 찌질하고 불쌍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자신을 '인간 실격자'라 칭하는 요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인물'이다. 최소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철저하게 삶의 상당 부분을 가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마 <인간 실격>을 접한 독자라면, 요조의 예의 가면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고 여기는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예의를 갖춘다'는 건 타인의 시선과 취향에 맞는 가면을 찾아 쓴다는 것의 다른 표현법 아닐까?
한편, 책에서는 요조 개인이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동시에 '신랄한 사회 비판'도 맹렬히 다루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인간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
부끄럼이 지나쳐, 인간에 대한 공포심까지 안고 있던 요조가 세상 온갖 밑바닥(돈, 창녀, 술, 모르핀으로 인한)을 경험하면서 인간 세상의 악(비합법, 음지의 사람, 법인 의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빛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하는 책. 요조가 생각하기에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마저 폭력과 배신으로 둔갑되는 이 '비정상적으로 惡한 곳', 즉 '지옥'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인간 실격>.
과연 이 인간 세상에서 죄 아닌 것은 존재하는가, 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던 작품인 만큼 이 책에 대해 느낀 최상위 감정은 '슬픔'이었다. 이 슬프고 아픈 세상에서도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기 위해' 어느정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어쩌면 인간 실격자가 되는 것이 가장 순수한 투쟁의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물론, 생각에만 머물겠지만….
사람과 접할 때면 끔찍한 침묵이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을 경계하느라 원래는 입이 무거운 제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익살을 떨었던 것입니다만, 지금은 호리키 이 바보가 무의식적으로 그 익살꾼 역할을 자진해서 대신해 주었기 때문에 저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저 흘려들으면서 가끔 설마, 라는 둥 맞장구치면서 웃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 p. 47에서
특히나 저는 합법적인 세계에 있을 때보다도 그 비합법적 세계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소위 '건강'하게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래성 있는 동지로서 퍽 하고 웃음이 날 만큼 과장되게 비밀스레 다루어지던 갖가지 임무를 떠맡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 p. 52-53에서
원래대로 경박하고 가식적인 익살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 p. 62에서
남자의 말투에는,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투에는 이처럼 까다롭고 어딘지 애매모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미묘한 복잡함이 있어서, 거의 무익하게 생각되는 이런 엄중한 경계와 무수한 성가신 술책에 저는 언제나 당혹하고 에이 귀찮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기분이 되어 농담으로 돌리거나 무언으로 수긍하고, 말하자면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p. 78에서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 p. 82에서
단팥죽과 그 단팥죽을 기꺼워하는 호리키에 의해 저는 도시 사람들의 조촐한 본성, 또 안과 밖을 딱 부러지게 나누어서 살고 있는 도쿄 사람들의 실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 p. 85에서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 p. 92에서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 p. 9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