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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리뷰

일상의 모순, 그리고 위트

특정 장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기를 좋아하는 장률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 제목에서부터 주인공들이 어디에 발 디딜지가 명백히 보이는 이번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보다 확연히 '재미'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다. 특정한 장소에서의 특별한 이야기. 사실, 장률 감독의 작품들에서는 이렇다할 기발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적으로 풀기엔 왠지 심심하고 밋밋해보이는 일상들이지만, 그의 손을 거친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끝내 '특별하게' 느껴진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 <경주>와 비슷한 감수성을 갖는다. 군산을 찾은 두 남녀가 일본식 가옥에 머무르며 일어나는 일상을 스케치한 작품으로, 박해일(윤영 역)과 문소리(송현 역)가 주연을 맡았다.



<경주>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게,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역시 지도 앞에 선 주인공들로부터 시작된다. '왜'라는 이유를 생략한 채 군산에 첫 발을 디딘 두 사람의 행적을 좇는 카메라는, 그들이 먹고 걷는 곳들을 따라다니기만 한다. 하여, 우리는 이들의 관계도 모른 채 스크린을 바라보게 된다.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식당 주인의 소개로 '사람 가려 받는' 일본식 가옥을 숙소로 택한 둘. 민박집 사장은 흔쾌히 이들을 받아들인다. 숙소 사장은 자폐증이 있는 딸 하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고, 아내는 죽었다.


송현은 묵묵한 매력이 있는 사장에게 호감을 느끼고, 윤영은 그런 송현과 사장의 관계를 질투한다. 그리고, 사장의 딸은 윤영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 애매한, 풀릴 듯 하지만 엉켜있는 실타래 같은 네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지닌 매력이다.



영화는 크게 두 개로 분류돼 있다. 첫 번째는, 앞서 설명했던 윤영과 송현의 군산에서의 에피소드고, 두 번째는 이들이 군산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두 번째 장이 시작되고서야, '왜' 이들이 군산으로 향했는지,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윤영은 송현을 형수라 칭한다. 송현은, 윤영의 친한 형과 결혼했다 지금은 이혼한 상태다. 알게 모르게 송현을 짝사랑했던 윤영은, 송현의 이혼 소식을 은근히 반가워한다. 이렇게 둘은, 몇 차례 만나게 되고 어쩌다 군산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를 단순하게만 보면 남녀의 군산 여행기 정도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물에 집중'하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지인들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는, 한국인과 외국인 그 중간에 있는 이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재중동포인 송현과 윤영네 가사 도우미, 재일동포인 숙소 사장이 바로 그들이다. 윤영은 한국인이긴 하지만, 중국어를 곧잘 하고 어린 시절 화교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고 한국 땅을 밞고 살아가고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무시와 비난을 받기 일쑤인 사람들. 영화는, 이들의 불안을 일상에서 포착해낸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모순'을 드러내는 공간과 인물들이 존재한다. 군산 위에 놓인 일본식 가옥, 한국에서 살아가는 재중, 재일동포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질감이 인간 본연의 것들을 파괴해서는 안 될 일이다. 타국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해서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그것에 깊이 물들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곳곳은 상처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혈통이라고 해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속 인물들은, 혈통에 관계 없이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사랑을 행한다. 운명적인 끌림은, 장소. 즉, 배경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 어떤 경계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경주>를 본 후, 작품 속 배경이 된 찻집 '아리솔'을 찾기도 했었다.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그 곳으로 향하고 싶은 욕구가 들곤 하는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보면서도 군산으로 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라고 다 같은 풍경을 지닌 게 아니다. 감독이 군산에서 일본과 중국의 면모를 노래했듯이 말이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군산이라는 아름다운 장소에 대한 정보성과 재중동포인 감독의 자기고백적 이야기가 담긴 서정성을 갖춘 영화다. 일상 연기의 달인인 박해일, 문소리의 일품 연기는 이 영화의 멋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장률 감독의 팬이라면, 그의 앞선 작품들보다 확실히 재미있다고 느낄 법도 하다(물론, 상대적이겠지만). 군산에서 마주친 우연과 그것들로 얽힌 일상의 에피소드가 지닌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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