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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다


엘리트 남편, 아름다운 아내, 사랑스러운 딸. 남부러울 것 없는 일가족이 식칼로 살해당했다. 무참하게 난도질 당한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기자 다나카가 1년 전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다나카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의 여동생 미츠코는 아동방치죄로 수감 중이고, 그밖에도 이들 가족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는 듯하다.



상당 부분은 다나카가 살해된 부부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 인터뷰하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그 과정에서, 살해된 부부의 '그럴 만한 이유'들이 밝혀진다. 물론, 이 이유들이라는 것도 주변인들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정답으로 볼 수는 없다. 인터뷰이들의 말들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리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살인자뿐 아니라, 인터뷰이들도 가해자라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만큼, 모든 이들은 폭력을 당하는 동시에 가한다. 이렇게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이기심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음을 지적한다.



영화가 지적하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는 계급화다. 그 누구라도 더 나은 환경을 거부할 리 없다. 하지만, 이 바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의 한계에 부딪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산, 부유층을 동경하는 평범한(혹은 그 이하) 집단의 욕망과 그것을 향한 허영들을 꼬집는 장면들이 상당 부분 등장한다. 대기업 취직을 위해 부유층 여자들을 이용하고, 학업보다는 미모와 처세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여대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나카 남매의 형편은 어려웠다. 환경을 극복하고자 발버둥쳤지만, 계급의 벽에 낙담하고 만다. 개인과 사회의 폭력에 시달려 온 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는 폭력뿐이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다루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계급과 신분에 의한 문제점들이 대두되고 있다. 우월감과 열등감, 이로 인한 갑질과 분투로 점철된 지 오래다. 신분 상승을 위한 처절한 노력은 예전부터 이어져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행복이라는 것과 멀어지고 말 것이다. 다나카가 타고 다니는 버스 안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실에 지친 이들의 표정은 이미 우리가 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모두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완벽해 '보이는' 이들의 이면은 우리의 자화상과 다름 아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많은 폭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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