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12편을 몰아봤고 그 이후편은 제 시간에 챙겨봤던 <멜로가 체질>은 오랜만에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국내 드라마다. 나 혹은 내 친구가 겪고 있을 법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의 매력은 '공감'이다. 더군다나 주인공 4인방(임진주, 이은정 황한주, 손범수)이 영상 관련 종사자들이다보니 그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띵언'의 연속이었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열렬히 먹고 이야기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는 진주의 입을 빌어 자주 언급됐던 대사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드라마에서는 기도 대신 이야기(수다)에 힘을 실었다.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만 봐도 감독과 작가가 이야기에 얼마나 힘을 실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이야기가 승부가 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절친들의 동거에 있다고 본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한 지붕 아래에 모여 출출한 배를 라면으로 채우며 서로의 고민과 좋은 일을 나누는 것. 드라마는 이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일상을 염탐했던 길지 않은 시간이 끝났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내 주변의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칭찬하는 것을 봐왔다. 그들의 글과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멜로가 체질>의 강점은 명언(대사)들이었다. 특히 드라마의 엔딩에 그 화에 등장했던 좋은 대사들을 캘리그라피로 한 번 더 정리해줌으로써 잊힐 수 있는 것들을 상기시켜주는 것에서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 취지대로 좋았던 대사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인생]
"그래, 꽃길은 사실 비포장 도로야."
[나이 들어갈수록 공감할 만한 대사]
"자기 입장이라는 게 있지만 우리 나이에 안 한다는 말 더 신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기회라는 게 그렇잖아. 주름이 다 빼앗아가. 나이 먹을수록 잘 안오잖아. 이 사회가 그래요. 그러고 보니까 안 하겠다는 말. 나 해본 기억이 멀어. 그게 뭐라고 그런 말도 못하고. 왠지 슬프지만 내가 안 한다고 하면 자기가 하겠다는 애들이 뒤에 백만명이 서있어."
[신경 쓰이는 옛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아는데 내가 왜 그걸 신경쓰고 있는 걸까요?"
"괜찮아, 사랑했던 사람은 원래 평생 신경 쓰이는 사람으로 남는 거니까."
"그래요?"
"그럼요. 잘 돼도 싫고 안 돼도 싫고 내가 아는 사람이랑 잘 되는 건 더 싫고."
[사랑]
"헤어지는 이유가 한 가지일 수는 없지. 한 가지 이유로 사랑했던 건 아니었을 거 아냐."
"만약 사랑한 이유가 한 가지뿐이라면?"
"둘 중 하나 아닐까? 금세 증발되어버릴 그 하나에 대한 짧은 호기심. 혹은 불결한 목적을 지닌 접근. 아 몰라, 어쨌든 사랑은 자동차 소모품 같은 거야. 소모가 덜 됐으면 굴러가고 다 안 됐으면 안 굴러가고."
[사랑의 시작]
"우리 떨어져서 일하고 서로 바빠지더라도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개뿔, 그러지 말자. 매일 보는 거야. 싸우더라도 얼굴 보고 시원하게 멱살 잡고 매일 보는 거야, 매일."
[이별 후]
"우린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누가 누구한테 비싼 밥 사주지 못한 거 후회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도 너한테 이런 음식 못 사준 건 똑같아. 너 미워하고 욕하고 그래, 최근까지 그랬던 건 맞아. 나도 당연히 후회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조금 달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앞질렀달까. 그때 우린, 그때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 한거야.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자연스럽게.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게 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돈]
"돈은 언제까지 없는 거야?"
"돈은 계속 없는 거야. 지금은 공부하니까 없는 거야. 그러다 다행히 합격했어, 공무원 됐어, 안정적으로 월급 들어와, 그럼 결혼하겠지? 그럼 집 구해야지. 그게 네 집이야? 은행집이야. 또 없는 거야. 그래도 성실하게 20년 동안 죽어라 일해서 갚아. 근데 애가 있겠지? 애들이 대학 간대. 그럼 또 없는 거야. 착실히 일해서 애들 공부시켜. 근데 은퇴할 나이네? 또 없는 거야."
"와, 인생이 '그냥 뭐 없는 거야'네?"
"그나마 이게 성공 사례야."
내가 볼 땐 <멜로가 체질> 속 세 친구는 나이에 비해 꽤 성공한 인물들이다.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일과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고민에 대해 보다 괜찮은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사람의 체질, 혈액형, 생김새 등이 모두 다르듯 멜로(사랑)에도 체질이 있고 그 모든 다름은 인정과 존경받아 마땅함을 일러주는 이 드라마. 매력 있다.
나, 그리고 당신의 삶 역시도 각자의 체질과 온도가 있다. 그건 숨 쉴 때마다 달라질 수도, 한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잘 굴러갈 수도 늘 삐걱대고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있는 존재다.
드라마 속 대사에도 나왔듯 <막돼먹은 영애씨>처럼 시리즈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소소한 이야기들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멜로가 체질>은 나의 드라마 체질(취향)이 확고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입증시켜 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