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

대한민국 여성 역사의 연대기


<82년생 김지영>은 제작 소식이 발표되면서부터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다. 2016년 출간된 원작인 동명의 베스트셀러 역시 말과 탈이 많았던 것이 논란의 주된 원인으로 볼 수 있고, 하필 제작이 확정된 때가 젠더 갈등으로 시끄럽기도 했던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완성된 영화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기쁜 일이다.


영화는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여성의 역사를 말한다. 김지영은 우리나라의 여성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는 수시로 그녀 외의 다른 여성이 된다. 엄마가 되기도 하고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출산 후 독박육아를 감당하는 과정에서 산후우울증을 안게 된 김지영은 정상이 아닌 상태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 상태가 되었을까.


그 원인은 한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지영의 역사로부터 축적된 결과다. 남아선호사상이 깃들었던 사회적 풍토,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둔 가정 환경, 직장에서의 여성 대우, 결혼 후 출산한 엄마로서의 생활과 시부모와의 갈등. 이 모든 것들이 김지영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김지영은 자신이 아픈지 모른다. 자신이 정상인 줄 아는 그녀는 재직의 꿈을 안고 고군분투하지만 그마저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태생이 여성이기 때문에 살림과 육아가 '만족스럽고 때로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김지영 뿐만 아니라, 영화 속의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당연히 해야만 하는 역할을 담담히 감내해왔다. 가족들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김지영의 엄마, 집안 형편 때문에 꿈을 바꿔야만 했던 김지영의 언니, 능력이 있어도 진급이 안 되거나 늦는 김지영의 직장 상사와 동료 모두 피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작을 읽었을 때도 가슴이 무너졌던 단어인 '맘충'. 영화를 봤을 때도 이 단어가 들렸을 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남편이 벌어준 돈으로 커피 한 잔 마시는 광경을 보고 비아냥대는 어투로 '상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벌레 취급을 받는 육아맘들. 인간 취급조차 못 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여성을 지켜보는 과정은 괴로웠다.


사실 나는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을 통해 그들만의 고충을 들어온지는 오래다. 출산 전에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하며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친구들은 출산 후 '남편과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로 바뀌어버렸다. 20대 중반에 결혼했던 친구 한 명은 내게 툭하면 '아이 때문에'라는 한탄조에 가까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산후우울증을 겪었다는 친구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다시 일하고 싶지만 직장으로 돌아가기 두려워하는 친구들도 다수다. 한 직장에서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육아맘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 없는 삶을 살아갔다.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상황 때문에 직장에 나오는 이들도 있었고, 그러다 아이가 아플 때면 계획에 없던 결근을 하기도 했다. 왜 육아는 여성만의 몫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의문을 품어왔었는데, 책과 영화를 봤음에도 아직도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 아직도 육아는 여성에 편중돼 있다. 물론 남녀의 역할이라는 건 존재한다. 하지만 김지영의 직장 동료가 했던 말처럼 '육아는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육아휴직제도가 생겨난 것도 '육아는 함께하는 것'이라는 관념에 기반한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남편만큼 돈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꿈도 이룰 수 없고, 꿈을 이루려 해도 가치가 환원되지 않는 사회는 명백히 불공정하다.

다행히도 사회는 많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갈등이 잦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투쟁은 답이 아니다. 무엇이든 함께하고 양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찾은 극장에는 여성 관객이 대다수였다. 그녀들 중 상당수는 한숨과 눈물을 내비쳤다. 이는 <82년생 김지영>이 공감대가 두터운 영화라는 뜻일 테다. 부디 남성도 이 영화를 관람해 조금이나마 여성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정해야 할 사실은 <82년생 김지영>은 '철저히 여성의 관점을 대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고충을 토로하고 싶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길 바란다면 타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역사의 연대기를 그린 영화다. 수많은 갈등에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기 때문에 명백히 가치 있는 작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레피센트 2> 스크린X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