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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분 간의 몰입!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과연' 그 곳에는 희망이 있을까

234분의 러닝타임, 시종일관 어둠으로 이어지는 화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인물들.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가 지닌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세계 유수 영화제의 수상 경력과 평단 및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친구의 자살, 학교폭력, 원조교제, 불륜, 노인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각 사건의 중심 인물들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주인공은 네 명으로, 영화는 이들이 겪는 '최악의 하루'를 전개한다.



영화는 '한 자리에 앉아만 있는 코끼리'의 이야기를 꺼내는 '위청'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친구의 부인과 불륜 관계다. 이 사실을 안 친구는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어머니는 동생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을 위험에 빠트린 아이를 찾아 나선다.



위청의 동생을 중태에 빠트리게 만든 장본인 '웨이부'는 친구를 지키려다가 졸지에 살인자 취급을 받게 된다.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가해자로 오인받고 있는 그는 유일한 재산인 당구큐대를 팔아 도망치려 한다.



웨이부는 '황링'을 짝사랑 중이다. 황링에게 자신과 함께 갈 것을 권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황링은 학교 부주임과 원조교제 중인데, 이 사실이 학교 전체에 펴지고 만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소원하다.



퇴역군 '왕진'은 딸 내외와 함께 살아가지만 늙고 쓸모 없다는 이유로 양로원에 보내질 지경이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개는 거리에 돌아다니던 개한테 물려 죽고 만다.



영화는 이 네 명의 암담한 현실을 걷는 인물들을 통해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교차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지적하고 조금이나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태도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 속 '코끼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등장 인물들은 코끼리가 있는 만저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가고 싶어한다. 발 디딜 곳 없는 인물들은 정처없이 걷고 걸어 만저우리로 향한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희망'의 상징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코끼리가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끼리는 네 명의 인물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코끼리는 결국 서커스단 목적에 의해 '이용 당하고' 있다. 이는 특별한 가해를 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피해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가해자로 오해 받는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웨이부는 아빠, 길거리의 어른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고 왕진은 자신의 개를 죽인 가해자 집단에게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는가 하면 식사 도중에 폭력을 당한다.


눈 여겨 볼 것은 웨이부와 왕진은 타인의 사건을 도와주려다(참견했다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상황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가 관객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다. 암담한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더 벗어나기 위해서는 '관심(관여)을 통한 공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서서 걸어가는 행동을 취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실낱 같은 희망을 기대할 수는 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를 지켜보는 동안 '언젠간 희망을 보여주겠지?'라는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결코 이 영화는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암울하고 막막한 상황만 이어지다 명쾌한 해답 없이 끝맺음된다.


이 영화가 더 암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감독의 삶과도 유관하다. 후 보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제작사와의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감독의 생 자체가 작품 속 세계관과 이어져 있어 작품의 여운은 더 크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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