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공식은 없지만 노력은 필요하다

좀 더 노력하자

사랑의 방식에는 공식이 없다. 자신의 기준이 '올바른' 방식이자 공식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이해가 따른다.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 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관계가 있다. 서로 다른 사랑길을 걸어온 남녀는 서로의 사랑 방식에서 '낯섦'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당사자는 이해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질감을 좁혀나가는 노력으로 하여금 관계는 가까워지고 깊어진다. 하지만 이런 게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일방적인 사랑을 할 때다. 짝사랑은 물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깊이 사랑'하는' 이는 상대의 '온갖'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한다. 또,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든 맞추려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대는 덜 노력한다. 그럴수록 상대의 서운함은 깊어진다. 진척될 것 같지 않은 관계에 대한 노력을 헛된 것이라는 생각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쁜' 생각의 끈을 잘라버리고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더 노력하면 되겠지, 그럼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만큼 언젠간 당신도 나를 좋아해주겠지.'


덜 노력하는 이는 상대의 마음을 가볍게, 혹은 버겁게 느낀다. 나쁜 마음을 먹는 이들은 사랑'받는' 것을 '즐기다'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사랑하는 사람은 늘 힘들다.


하지만 관계의 '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랑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이별에도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기만 했던 사람은 갑자기 비어버린 애정 때문에 더 큰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공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공복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줬던 이에게 다시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상대가 준 사랑의 크기가 컸다면 연락에 대한 욕구가 더 클 것이다. 힘듦이 시작된 것이다.


그제서 사랑을 받기만 했던 사람은 상대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것이 상대 자체인지, 상대의 노력인지는 중요치 않다. 여하튼 상대를 생각한다는 것이 '변화'다.


이처럼 사랑에는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다. 시차가 다를 뿐, 마음 쓰이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다. 아픔과 슬픔이 있더라도 찰나의 행복들을 위해 사랑을 한다.


일방적인 사랑, 크기가 다른 사랑에는 힘듦이 따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대에 대한 마음과 노력을 줄이라는 것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덜 사랑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노력할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별 후에 폭풍처럼 밀려오는 공허감에 더 힘들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