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성(性)스러운 영화가 있나
<페르소나>는 연기자 아이유(본명 이지은)의 팔색조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영화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연기력을 입증한 바 있는 그녀이지만 영화판에 발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강한 의지가 돋보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페르소나>는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4인의 감독의 단편(<러브 세트>, <썩지않게 아주 오래>, <키스가 죄>, <밤을 걷다>)을 엮은 옴니버스 영화다. 이지은은 네 작품 모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페르소나>를 구성하는 네 작품 모두 파격적이고 재기 발랄하다. 넓게 보면 '사랑'이라는 동일한 주제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줄기와 잎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이지은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 편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을까. 하나씩 정리해보겠다.
이경미 감독의 <러브 세트>는 질투와 욕망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영어 선생님과 아빠 사이를 오가며 욕망을 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입 가득 자두를 베어먹는 모습, 피땀 흘려가며 영어 선생님과 '한 판' 벌이는 테니스 경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제시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진짜 욕망'은 무엇일까. 그녀가 질투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이를 생각하고 본다면 이 영화에 매료될 것이다.
두 번쩨 작품 <썩지않게 아주 오래>는 임필성 감독의 작품이다. 고양이 자세로 요가를 하고 있는 주인공 '은'이 'collector'라고 소개되는 것부터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수집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사랑의 마음'이다.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남자들의 심장'이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김종관 감독의 작품일 줄로 짐작했다. 김 감독의 <더 테이블(2016)>을 봤던 관객들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오랜만에 재회한 남녀의 상황은 <더 테이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으니까.
한편, <클로저(2004)>도 연상됐다. '은'의 "그렇게 얘기하는 사랑이 뭔데? 참사랑을 좀 보여줘봐 마음을 꺼내서 좀 나한테 보여봐. 여기다 좀 내놓아보라고"라는 대사가 <클로저>의 앨리스가 했던 "어디 있어?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 마디 말은 들리지만 그렇게 쉬운 말들은 공허할 뿐이야"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썩지않게 아주 오래>의 발상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사랑의 관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기괴한)영화다.
전고운 감독의 <키스가 죄>는 키스를 알지 못했던 두 소녀의 순수한 욕망이 돋보이는 영화다. 주인공 '한나'는 친구 '해복'이 첫키스 후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자 소심한 복수를 감행한다. 하지만 '역시나' 복수의 길은 쉽지 않다. 이 과정과 함께 키스에 대한 '한나'의 욕망을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는 세상을 떠난 여인 '지은'이 생전의 연인 '준원'의 꿈에 찾아가 밤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시간은 그 어떤 연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보다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을 보면서 사랑과 동시에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고, 또 상당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세 작품들에 비해 감성적인 측면이 두드러져, 되레 이질감이 들었던 영화.
이렇듯 <페르소나>는 다양한 여성상을 개성 있게 보여준다(<밤을 걷다>는 다소 약하지만)>는 점, 이지은의 영화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프로젝트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