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가 미덕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직장 문화가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일본 사회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문화가 바뀐다 한들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전히 칼퇴를 하거나 연차를 쓰는 데는 눈치가 보이기 십상이다.
드라마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의 주인공 '히가시야마 유이'는 6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친 후 퇴근 도장을 찍는다. 소위 말하는 '칼퇴의 요정'이다. 칼퇴문화가 자리잡힌 회사가 아닌데다, IT 업계 특성 상 야근이 잦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선배(특히, 부장)나 동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그녀는 "오늘 업무는 다 끝냈다"며 당당히 칼퇴근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동료들은 히가시야마가 '정해진 시간에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임을 알아간다. 심지어 후배와 동료들은 그녀의 업무처리방식을 배우기까지 한다.
물론 히가시야마 역시 업무에 목숨 건 때가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걸었다. '빨리빨리'를 강조하고 '야근'을 부추기는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다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끔찍한 사건을 겪은 바 있다. 이후, 그녀는 살아감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히가시야마의 약혼자였던 타네다는 그야말로 '일 중독자'였다. 그 탓에 파혼이라는 가슴 아픈 경험을 했다. 트라우마를 안고 있던 히가시야마는 타네다와 '다른' 퇴근 후에 맛있는 요리를 해주며 워라밸을 지키며 살아가는 '타쿠미'와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면 히가시야마가 깨달은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과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재차 강조되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장이 주는 다양한 중압감에 의해 건강을, 스스로를 해치며 살아간다. 가족의 생일에 식사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는 이들도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직장생활(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살아가면서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일에 찌들어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가 하면,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탓에 가족과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못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와 같은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일 밖에 모르는 그들의 삶은 일이 사라지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고만다. 남는 건 가족의 원망과 한숨 뿐.
이쯤 되면 히가시야마의 퇴근 후 삶이 궁금할 것이다. 그녀는 6시 칼퇴근 후 근처의 단골 중화요리집으로 뛰어가 '반값맥주'를 마신다. 좋아하는 샤오룽바오와 함께 들이켜는 맥주는 하루(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또는 타쿠미와 함께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하루의 일과를 공유하는 등 충분한 대화를 즐긴다.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행복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히가시야마의 모습은 나의 직장생활기를 보는 듯했다. 나 역시 회사에서 칼퇴요정으로 유명했다. 근무시간 내에 업무에 집중해 할당량을 끝내놓고 6시면 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일이 없는 사람으로 봤을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물론 필요할 땐 야근도 했다. 회의가 필요한 경우나 제안서 작성 기간에는 다음날이 되기 직전에 퇴근하기도 했다.
나 역시 히가시야마처럼 늦은 퇴근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기에 워라밸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땐 이르면 11시 퇴근, 늦으면 다음날 새벽에 퇴근해 샤워만 하고 회사로 복귀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한 태도는 업무의 질을 떨어뜨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일을 그르치는 풍경은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칼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워라밸 덕분에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다.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는 워라밸의 가치, 나아가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러주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