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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리뷰

내 마음을 온전히 고백할 수 있는 대상은 몇이나 될까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때로는 상황에 가로막혀 전하고 싶은 마음을 꽁꽁 숨겨야 할 때도 있다. 어찌됐든 나의 생각이 타인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 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롯'(스칼렛 요한슨)의 관계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생긴다(사랑의 완성을 예상하지는 말 것). 위스키 광고 촬영 차 도쿄를 방문한 영화배우 밥과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 온 샬롯. 둘에게는 각자 가정이 있지만 외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이 우연히 만나 벌어지는 일주일 간의 에피소드는 화끈하기보다는 정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만은 없다. 일순간의 만남으로 가정을 파탄시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게다가 나는 둘의 관계를 로맨스에 입각하여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좋았다.



밥과 샬롯은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큰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밥은 배우로서 명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예일대 철학과까지 나왔지만 제 일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샬롯은 여러모로 공허감을 겪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낯선 문화와 언어가 난무하는 일본은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때 언어가 통하는 둘의 만남은 극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은 자주 만난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말이 통한다'는 것만으로도 둘은 서로에게 즐거운 상대가 되어준다. 함께하는 동안, 이들에게서 외로움과 무료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동병상련에 처한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공감의 위력이다.



하지만 감정에 앞서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다행히 밥과 샬롯은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남긴 채 헤어진다. 이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여행(낯선 장소에서의 경험)의 가치와 성숙한 이들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외로움을 겪는다. 생경한 환경에서 겪는 즐거움 때문에 여행을 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을 만나게 되면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따라서 밥과 샬롯의 관계처럼 로맨스가 만들어지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다(내 주변에도 여행 중에 만나 커플이 된 실례가 있다). 이처럼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로맨스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낯섦은 익숙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도 한다. 낯선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다. 샬롯 역시 밥의 조언을 통해 깨닫는 것이 생긴다.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게 될수록 당신을 힘들고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줄어들 것이다." 밥은 이런 명언을 할 수 있는 멋진 중년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밥과 샬롯의 만남은 새로운 자극과 성장의 동력이 되어줬다. 무료함을 즐거움으로 채운 추억만으로도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볼 수 있고, 샬롯은 멘토 같은 밥을 만나 격려를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관계로 볼 수 있는 배우자에게도 터놓지 못한 내면을 고백하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 둘의 관계는 상당히 매혹적이다. 불타오른 사랑이 아닌 애틋한 정서로 쓰여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외로움과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영화의 낭만으로 채워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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