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사실, 우리 모두 복 많은 사람이지!

마흔 살의 이찬실(강말금)은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는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지 감독(서상원)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당장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찬실은 달동네로 이사하고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네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렇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한순간에 삶이 바뀌어버린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찬실은 영화일에 취해 연애도, 결혼도 안 하며 살아왔다. 소위 '일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찬실의 실직은 실연과 다름없다는 의미다.


이후 찬실은 고민에 빠진다. 오랜 기간 사랑해온 것을 잃자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사는 게 뭔지'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워야 또 채우지." 찬실이 긴 고민 끝에 집에 있던 영화 서적들을 정리할 때 집주인 할머니(윤여정)가 꺼낸 말이다. 그동안 온통 영화로만 채워 온 찬실의 삶은 비움(정리)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찬실이 발견한 삶의 미학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소피의 후배이자 단편영화 감독 김영(배유람)에게 호감을 느낀 찬실은 타인과 추억을 공유하는 것과 상대를 이해하는 것의 의미를 알아간다. 일, 그러니까 영화 외에도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깨닫게 된 것이다.



찬실은 김영과의 관계 외에도 알게 모르게 사랑(관계성)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찬실이의 '복'이다. 겉보기에 찬실은 복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실직 상태에, 가사도우미로 밥벌이를 하는 그녀의 현재를 부러워할 이는 그 누구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덕분에 찬실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절망의 순간에 놓였을 때 사람보다 힘이 되는 존재는 없다. 소피가 없었다면 밥벌이도, 김영과의 인연도 없었을 것이다. 또 달동네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지혜로운 할머니와 장국영(김영민)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존재한다. 다만 희망을 재기의 동력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찬실네 집주인 할머니다. 딸을 잃고 홀로 오래간 살아온 그녀의 주옥같은 말들은 찬실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큰 힘을 선사한다. 나는 할머니로 분한 윤여정의 모습에서 故 키키 키린(きききりん)의 모습을 발견했다. 키키 키린은 다수의 영화에서 촌철살인의 대사들로 캐릭터들의 멘토 역할을 해온 배우다. 이 영화 속 윤여정의 말들 중 인상 깊었던 명대사는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와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이다. 앞의 대사는 메멘토 모리의 정신이, 뒤의 대사는 본인과 찬실(그리고 우리 모두)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좋은 대사네'라며 되뇌고 있다.


찬실처럼 우리 모두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씩씩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또 타인의 소중함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완벽에 가까운 것을 생산해낸다. 내가 타인에게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는 이유도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임을 잊지 말자. 만약 인간이 완벽하다면 타인은 미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나 역시 복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선한 소재가 기대되는 영화 <사라진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