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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바리움>,
섬뜩한 하우스 미스터리

비바리움(vivarium)은 관찰·연구를 목적으로 테라리엄 속에 소동물을 함께 넣어 감상하는 원예 활동을 뜻한다.


영화 <비바리움>은 사전적 뜻을 기괴하게 그려낸다.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The Empire of Light, 1954)'이 연상되는 마을 '욘더'는 심미적인 동시에 그로테스크하다.



주인공 '톰'(제시 아이젠버그'과 '젬마'(이모겐 푸츠)'는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다. 함께 살 집을 찾던 중 부동산중개인으로부터 욘더를 소개받는다. 겉보기에도 미심쩍은 중개인은 커플에게 9호 집을 보여주던 중 홀연히 사라진다.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차에 올라탄 톰과 젬마. 하지만 둘은 똑같은 주택이 즐비한 미로 같은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갇히고 만다.



영락없이 욘더인이 되어버린 두 사람. 이들의 유일한 생존 방식은 적응하는 것뿐이다. 정체 모를 존재가 남기고 간 것은 먹거리(가공식품)와 갓난 아기가 든 상자. 그 안에는 '아이를 잘 키우면 탈출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비정상적이다. 자라나는 속도가 인간의 몇 배나 빠르고 인간의 모습을 따라하지만 인간미가 전혀 없다. 즉, 감정이 없는 생체다. 톰은 '돌연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화에서도 존재에 대한 확실한 설명을 내놓진 않는다.



이들의 존재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뻐꾸기 새끼와 닮았다. 뻐꾸기는 스스로 새끼를 키우지 않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 알을 낳고 떠나버린다. 그렇게 태어난 뻐꾸기는 둥지의 본 주인(다른 새끼)을 밀어내고 생존해나간다. 그러고는 자신을 키워준 새들을 배신하고 홀연히 둥지를 떠난다.


영화 속 아이도 마찬가지다. 감정 따위 없는 아이는 톰과 젬마에 대한 일체의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잔혹한 짓까지 행한다. 그러고는 제 살 길을 찾아 나선다.


결국 욘더 마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테라리엄이다. 기이한 생체는 오직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인간의 욕망(본성)을 반영해 전략을 짠다는 것이다.


톰과 젬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것을 꿈꾸던 커플이다. 그다지 욕심이 많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도 집(둥지)에 대한 욕망은 있다. 그렇게 더 나은 집을 찾아나서던 중에 꾀임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비바리움>은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하던 것에 위험을 제기하면서 공포를 선사한다. 욘더 마을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규격화된 아파트와 흡사하다. 정해진 틀 안에서 생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톰과 젬마의 상황은 제 의지대로만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았다.


기묘한 비주얼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특징인 <비바리움>은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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