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성실히 산다고 해도 휴식은 필요해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날 때가 왔다. 휴가는 그동안 고생한 우리들에게 노닥거림과 늦잠을 공식적으로 허락한 기간이다. 피로 중독 사회에 시달리는 우리는 휴가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기회를 제공받는다.
평소의 우리는 사유와 취미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더불어 세상과 타인,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포용하는 법마저 잊고 살아간다. 슬픈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공간적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 시기가 바로 휴가다. 이 기간동안 우리는 완전한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즐긴다. 이때의 무대는 대개 해변이 된다. 어떠한 목적이든 우리는 휴가철이 되면 갑옷을 입고 전력을 다하던 전장에서 떠나 푸른 바다로 향한다. 그렇다면 해변으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 <안경>을 통해 살펴보자.
떠남
주인공 타에코(코바야시 사토미)는 몸체만한 캐리어를 끌고 섬마을에 도착한다. 예약한 민박집 ‘하마다’에 도착한 그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주인 유지(미차이시 켄)에게 ‘3년 만에 찾은 봄 손님’이라며 환대 받는다.
같은 날 이곳에 도착한 다른 이가 있다. 의문의 빙수 아주머니 사쿠라(모타이 마사코). 벚꽃을 뜻하는 이름처럼 그녀는 매해 봄마다 이곳을 찾아 얼음이나 식재료 등을 받고 빙수를 무료로 나눠준다.
이방인과 다름없는 타에코는 섬마을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아침마다 자신을 깨우는 사쿠라와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메르시(merci) 체조’라는 기이한 동작을 하는 마을 사람들이 불편하다. 특히 끊임없이 빙수를 권하는 사쿠라는 귀찮은 대상 1호다. 결국 참지 못하고 타에코는 인근 다른 호텔로 향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노동과 공부로 종일을 보내야 한다’는 방침을 듣고 도망치듯 뛰쳐나온다.
호텔의 방침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전장과 다름없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 정해진 시각까지 출근한 후 노동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타에코 역시 이와 같은 삶에 질려 섬마을에 왔을 텐데 또 다시 노동이라니. 내가 이 상황에 처했더라도 기겁하고 뛰쳐나왔을 것이다.
도망치듯 나왔지만 타에코의 몸과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다. 이유는 짐 때문이다. 생필품만 챙겨왔다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크기다. 우리도 타에코와 다르지 않다. 어딘가로 향할 때면 짐 싸기에 며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짐이 제대로 쓰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야말로 짐 더미일 뿐이다. 결국 타에코는 무거운 짐을 버리고 하마다로 돌아온다.
마땅히 갈 곳이 없기도 하지만, 타에코가 되돌아온 것을 보면 하마다는 분명 매력적인 곳인 게 맞다. 이곳 사람들과 문화를 귀찮게 여겼던 타에코도 결국 매력을 깨닫게 됐으니까. 그녀 뿐만 아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하마다에 처음 도착했다면 짜증을 냈을 것이다. 이유는 습관화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떠남은 이전보다 나은 곳을 꿈꾸는 이상에서 발생된다. 교양을 쌓거나 다른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혹은 생각을 바꾸기 위해 떠난다. 이 외에도 떠남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타에코가 섬마을로 온 이유는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는 곳’을 원해서이다.
“‘지구 같은 거 사라져 버리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는.”
우리도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때가 있다.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들을 맴돌 때 다른 곳을 찾아 이전의 궤적을 굴절시키고자 한다.
떠난다는 것은 재탄생을 의미이기도 하다. 출발은 부활의 시작이다. 우리의 삶은 여행에 비유되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성장해 나간다.
사색
하마다의 ‘사색하는 것이 특기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타에코에게 사색하는 방법을 딱 잘라 말해주는 이는 없다. 이유는 사색은 개인의 영역이며 ‘절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색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게 된다. 철학 없는 삶은 사상누각과 다름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사유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현대인은 사색하는 방법을 모른다. 타에코가 유지에게 사색하는 방법을 물어봤던 것처럼, 우리는 사색의 기회가 주어지면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온종일 먹고 자기를 반복하다가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전장으로 복귀해 또 다시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 휴가도 계획성 있게 보내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한다면 스스로의 의지대로 자신을 사용할 수 있는, 즉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안경>의 섬마을 사람들이 사색의 특기자들이 된 비결 중 하나는 메르시 체조다. 침묵을 가르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온 몸의 근육을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생각만으로도 건강한 삶이다.
사실, 이곳 사람들의 사색에 힘이 되는 핵심은 사쿠라의 빙수다. 그토록 먹기 싫어하던 타에코가 첫술을 뜨게 된 것은 유지의 권유 때문인데, 이로 인해 타에코는 빙수의 맛과 함께 사색에도 눈을 뜨게 된다. 사쿠라의 빙수는 직접 쑨 팥 위에 간 얼음과 시럽이 올라간 것이 전부다.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 메뉴에는 사쿠라의 인생관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 단순해질 것. 사쿠라는 근처에 잠깐 장보러 가는 느낌으로 가방 하나만 들고 단출하게 섬마을을 찾는다. 이는 살아가는 데 있어 생각보다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고, 그것들이 과하면 오히려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녀가 만드는 빙수의 재료가 심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쿠라표 빙수는 맛있다. 그 이유는 주재료인 팥이 맛있기 때문이다. 사쿠라는 다른 재료들에 힘을 빼고 팥을 쑤는 데 온 신경을 다 쓴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메시지는 본질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건 조급해 하지 않는 것’
이렇듯 사쿠라의 빙수는 단순하고도 조급하지 않는 슬로라이프(slow-life)의 미덕을 반영하고 있다. 많은 것을 소비하고 빠른 것을 종용하는 사회적 풍토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 쫓겨 사색하는 법을 모를 수밖에 없다. 그토록 자기발전을 바라지만 정작 중요한 사색할 시간과 방법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처럼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사색은 필수불가결하다. 자신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만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해변
해변은 그동안 못해왔던 사색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항해, 즉 사색하기를 마음먹은 이들은 해변으로 향한다. 바다와 땅의 경계인 해변은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인 나와 온전한 나에 대해 생각할거리를 제공한다. 인간적인 동시에 생경한, 현실과 이상, 경계와 자유가 공존하는 곳이 해변이다.
사색에는 시간과 안정이 필요하다. 시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해변은 사색하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로댕(Auguste Rodin)의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마냥 사색을 즐길 수 있다.
해변은 사색하기에도 좋지만 완전한 휴식과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에메랄드색 바다, 변화무쌍한 하늘을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근심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무질서의 대명사인 구불구불한 파도의 흔적을 감상하는 나른한 시간은 세상을 향한 이해심마저 높여준다.
이처럼 해변은 사색하기에 최적인 동시에, 미적 체험과 열린 시야를 갖도록 만들어주는 곳이다.
해변에서 사색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안경>의 인물들처럼 빙수와 맥주를 즐기며 바다를 감상해도 좋고 낚시를 하며 생물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다. 나는 걸으며 사유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이 걷기를 영감의 자극제로 활용했다. 특히,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걷기를 통해 문학세계에 입문하고 각종 영감을 얻기도 한 그는 “나는 걸을 때라야 명상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걷는 것은 자연물에 안기는 포근함을 선사하는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의 발자취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도록 해준다. 나 역시 산책을 통해 몰랐던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평소에 목격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접하면서 영감을 얻곤 한다.
여러분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만의 사색법’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눕거나 걷든, 바닷속을 유영하든 어떠한 방식이라도 좋다. 굳이 사색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가지 않더라도 해변은 완전한 휴식의 장, 그러니까 케렌시아(Querencia)로 생각해도 좋은 곳이다. 어떠한 목적을 갖고 찾더라도 해변은 우리를 포용해줄 것이다.
휴식
사색하는 법을 모르는 우리는 제대로 쉴 줄도 모른다. 휴식을 권장해도 쉬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다 주어진 휴가기간을 유예하다 날려버리는 이들도 있다. 현대인은 휴식이라는 처방약을 놓은 자유마저 상실했다. 이는 강도 높은 삶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인식 때문에 발생한 행태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삶은 고강도로 작동되는 기계와 같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기계는 한순간에 멈추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쉼 없이 달려가다 생의 끝자락에 머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예를 자처한 우리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휴가철 뿐이다. 그런데 이 시간마저 코피 터지는 여행으로 혹사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타에코 역시 마땅한 관광지가 없는 섬마을 풍경에 놀라는데, 그녀의 반응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싼 비용을 지불한 비행기 티켓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한 볼거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관광자의 마땅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을 때는 휴가기간 뿐임을 잊지 말자.
“아무리 성실히 산다고 해도 휴식은 필요해요.”
일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더 잘 쉬어야 한다. 휴식은 충전의 의미와 같다. 휴식이 의미가 없다면 인간에게는 잠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을 치열하게 보내온 당신은 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철학과 재충전의 원천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