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아노말리사>

현실감 짙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마주하면서도 애니메이션 작품인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아노말리사>. 영화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작가 마이클의 하루를 담는다. 고객서비스에 대한 연설을 위해 신시내티로 떠난 그는, 하루동안 많은 사람들과 접촉한다. 그 중, 우리가 집중해야 할 캐릭터는 세 명의 여성(지금의 부인, 과거의 연인, 신시내티에서 만난 여인)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이클이 신시내티에서 만난 여인 '리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남녀불문 동일한 남자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사실, 맨 처음 마이클의 부인이 등장할 때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장르가 퀴어영화인 줄 알았다. 결국, 마이클의 눈에 비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시각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그저 '동일한 타인들(=복제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랑했던, 사랑 중인 여성들조차 마이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미건조했던 마이클의 삶에 '빛'이 새어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녀가 바로 '리사'다. 그동안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건조한 남성 목소리였지만, 리사의 목소리만은 온전한 그녀의 것으로 표현된다. 타인의 관심에 익숙지 않은 리사. 그녀는 마이클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하지만, 마이클의 진솔함과 그에 대한 존경 등의 감정에 취해(물론, 술에도 취함)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들의 열정적인 정사신(scene)은, 설렘과 농염이 느껴질 만큼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섰다. 마치 실존인물들의 행위 같았다. 사실, 내가 이 영화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가 이 '핍진성'에 있다. 실사를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력과 시대성을 반영한 현실적이고도 철학적인 메시지. 이것들이 <아노말리사>의 매력이다.



결국, 마이클의 시각에 리사가 특별하게 보였던 것은 여지껏 쉬 겪어오지 못했던 '다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경한 느낌에 반하지만, 끝내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한여름밤의 일탈'로 종결되고 만다.


이렇듯, 충동적인 감정은 열정적이긴 하지만 금세 식어버리고 만다. 특별하다 여겼던 이성이 거슬리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씁쓸하고 애잔한 로맨스. 영화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가 하면, 판타지를 현실감 있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의 무표정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역할을 해냈다.


보고 듣는 등 실제로 접촉하는 세계(현실)와, 보이거나 잡히지는 않지만 생애 가장 중요한 관계이자 감정인 사랑. 둘 중,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야 할까. 이들 둘 모두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마이클의 옛 연인도, 하룻밤에 모든 사랑의 레이스를 함께 한 리사도, 결국 마이클의 현실에서는 오래간 관계가 이어질 수 없는 여성들이었다. 모든 열정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잊혀질 과거가 될 것임을 알아버린다면 사랑이라는 것도 어쩌면 허무한 관계이자 감정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좇는다. 계속 찾고, 그것을 유지하려 힘쓰고, 끝난 후에도 그것을 되풀이하며 우리의 소중한 시간들을 할애한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중요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순수해져야 할 것 같다. '드디어' 순수한 사랑을 찾은 듯 보이는 마이클도, 새아침의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열정 가득했던 순간들을 후회했다. 찬란한 햇살이 가혹한 형벌로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쓰라렸다.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아노말리사>. 나의 지난날들이 회상될 만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묘사와 거기에 녹아든 위트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품 전반에 녹아있는 사랑의 철학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요소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비포 선라이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