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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블루 발렌타인>

극단의 행복과 슬픔을 오가는 시리고 시린 영화

결혼, 해도 괜찮은걸까? 이상하게 나는 착잡한 사랑을 다루는 영화에 끌린다. 대개 그러한 영화를 두고 나는 '현실적인 로맨스'라고 부르곤 한다. '현실'적인 로맨스들이 꼭 '이별'로 종결돼야만 하는가? 결코 아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그래서 죽음 직전까지 서로를 보살피고 위하는 사랑도 많다. 물론, 그런 모습을 다루는 로맨스 영화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인간이기에 생의 끝이 존재하는 법이고, 노부부가 동시에 죽음을 맞지 않는 한, 남은 이는 평생 죽은 상대를 기리고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과연 행복일까. 그리움의 정서 또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욕망 앞에 맥 빠지고 마는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찾거나, 혹은 지나치게 사랑한 탓에 사랑하는 이의 행보를 뒤따른다. 무조건 사랑의 결말을 비극으로 단정짓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상당 부분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행복의 기운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우울과 슬픔의 감정들도 뒤섞여있다고 말하고 싶은거다.


<블루 발렌타인>은 '결혼'에 대해 현실적인 영화다. 결혼 전, 운명적인 만남과 연애를 했던 딘과 신디. 하지만, 이들은 결혼을 앞두고 삐걱대더니 결혼 후 관계가 흔들리고 튀틀린다. 능력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낭만적인 남자 딘. 똑똑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에는 서툴었던 신디. 딘 아닌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신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은 '사랑으로' 신디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꿈(일)도, 아이의 '진짜' 아빠도 포기한 채, 딘과의 결혼한 신디. 시작은 여느 부부보다 낭만적인 그들이다. 자신의 아이가 아님에도 결혼을 선택한 남자와 그의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결혼을 결심한 여자. 그렇게 시작된 결혼은 결국 위기에 봉착한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야겠다고 결심한 딘은, 기분 전환을 위해 둘만의 여행을 감행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 걷잡을 수 없는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모든 결혼생활에 지쳐버린 딘과 신디. 둘은 아주 자연스러운 이별을 맞는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고 한다면, <블루 발렌타인>은 결실의 전후 모두를 비춰준다. 역경을 딛고 결실을 맺은 부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별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향하는 온갖 로맨틱한 장면들과 가장 내리막길로 향하는 잔인하고도 비참한 순간들 모두를 기록하는 영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별의 이유로 달바꿈되고, 둘만의 행복했던 소재가 싸움의 원인이 되는 순간. 그들은 이미 이별을 직감했을 것이다. 사랑은 이처럼 잔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상황을 보내는데 어떻게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맞을 수 있냐는 거다. 행복을 다짐한 연인이 거리낌없다 느껴질 정도의 작별을 고하는 '쿨'한 영화<블루 발렌타인>. 우울과 슬픔으로 점철됐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여자와의 사랑은, 어떠한 조건과 마주할지라도 변함 없을 것이라 믿었던 딘.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줬던 남자와의 사랑은,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신디. 결국, 둘은 부부생활은 6년만에 종지부를 찍는다. 어떻게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것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그 사랑의 순간들을 '지속'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상대를 탓하고, 자신의 생활이 희생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행복한 가정생활과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무엇이든 유지가 힘들다. 사랑이 변한다기 보다는, 태도가 변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이같은 작품들을 보면, '나는 저러지 않길 바라'지만 그 누가 앞날을 감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픈 대상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최상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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