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한 다니엘의 선택
<글로리아를 위하여>는 켄 로치,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이 그리운 시네필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일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고단한 일상과 비극적인 현실을 담아냈다.
20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다니엘(제라드 메이란)'이 가족들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글로리아를 위하여>. 어둡고 긴 동굴(수감생활)을 빠져나와 드디어 빛을 볼 수 있으리라 믿었던 다니엘이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아내 '실비(아리안 아스카리드)'는 버스 운전기사 '리차드(장 피에르 다루생)'와 재혼했고, 딸 '마틸다(아나이스 드무스티에)'는 결혼해 딸 '글로리아'를 낳았다.
손녀(글로리아)를 보고 싶어하는 다니엘의 간절함과는 달리, 마틸다는 만남을 꺼린다. '뒤늦게 아버지 노릇'을 하려는 다니엘이 싫기 때문이다. 결국 실비의 노력으로 다니엘과 마틸다, 글로리아의 만남은 성사되지만 기쁨은 잠시 뿐. 불행의 파도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야간에 병원 청소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실비의 직장 동료들은 파업을 도모 중이다. 마틸다는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 중인 옷가게에서 짤릴 위기에 놓여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버 기사인 마틸다의 남편 '니콜라스(로벵송 스테브넹)'는 폭력배들에게 당해 팔을 다쳐 일자리를 잃는다. 이 때문에 '축복받아 마땅한' 글로리아는 돈과 보살핌이 들어가야 할 '짐덩이'로 전락한다. 불화가 쌓여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영화는 빈곤에 허덕이는 다니엘 가족의 얽히고설킨 문제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부의 불평등과 계급과 세대 간의 갈등을 일가족의 일상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가족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성애와 모성애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돈 벌 여력조차 없는 이 가족에게 사랑은 사치에 불과하다.
<글로리아를 위하여>는 빈곤을 극빈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다니엘의 가정을 힘들게 만든 것은 가난, 즉 가정의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다. 미묘한 계급 및 부적절한 관계가 뒤엉켜 있다. 이 점에 집중한다면, 영화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족의 비극을 막기 위한 다니엘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뜻한다. 낙관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모순은 다니엘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암울한 상황과는 반대되는 아름다운 시를 쓰며 자위(自慰)한다. 시를 쓰는 행위만이 다니엘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그의 모습은 이창동 감독의 <시, 2010>에 등장하는 '미자(윤정희)'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실비 역으로 분한 아리안 아스카리드의 연기이다. 이 작품으로 201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그녀는 연출을 맡은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의 아내이자 페르소나이다. 어머니와 아내, 노동자의 역할을 섬세하게 표현한 아리안 아스카리드의 연기력은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이다.
<글로리아를 위하여>는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내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묵직한 영화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고 싶은 관객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