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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모래알 프로젝트]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故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기 기념 프로젝트

작가들의 소소한 이야기 듣는 '모래알 프로젝트'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챕터와 연관된 나의 내밀한 이야기


오는 1월 22일은 故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해 세계사컨텐츠그룹은 작가가 생전에 집필한 수필을 집대성한 책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출간했다.



대중의 사소하지만 반짝이는 '모래알'이 궁금해진 출판사는 몇몇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모래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진행 방식은 협업 작가들이 책 속의 글을 오마주해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박완서 작가를 흠모해왔던 나는 흔쾌히 프로젝트 협업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챕터는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였다. 20대 후반부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염두에 두고 자료들을 찾아 접하면서 죽음에 대한 지식과 생각을 쌓아왔다. 그래서인지 목차를 훑을 때 '죽음'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혔다. '작가는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썼을까',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면 반가울 것 같다'는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이 챕터는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라는 카피로 시작된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인간의 생이 무한하다면 어느 누가 삶에 최선을 다 하겠는가. 목숨의 끝이 있기에 탄생과 살아가는 과정이 빛나는 법이다. 반대의 것들을 생각하며 느낄 수 있는 가치는 삶과 죽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의 끝이 있기에 시작과 과정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잠을 청할 수 있는 밤이 있기에 낮의 노동이 활기를 얻게 되는 법이다. 같은 맥락의 글을 잘 정리한 작가의 글을 옮겨본다.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약 인간이 안 죽게 창조됐다고 가정하면 생명의 존엄성은 물론 인간으로 하여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창조적인 노력도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지식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면 사랑의 기쁨인들 있었으랴. 추(醜)가 없으면 미(美)도 없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기쁨이 있듯이,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 p. 264



삶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땐 죽음을 떠올려보면 도움이 된다. 며칠, 혹은 한 달 뒤에 죽는다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느낄 수박에 없다. 무료함을 느끼기는커녕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영화를 통한 간접체험을 추천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감독 토머스 얀, 1997)>, <라스트 홀리데이(감독 웨인 왕, 2006)>,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감독 로브 라이너, 2007)> 속 주인공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이 삶에 대한 태도를 재정립하는 데 적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죽음은 3년 전 외할머니의 영면이다. 추석 전날이었다. 이 ‘사건’이 생길 거라는 예상을 전혀 못했던 우리 가족은 달뜬 마음으로 시골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우리의 기분을 180도 바꿔 놓았다. 입었던 밝은 옷을 어둡게 고쳐 입고 급하게 시골로 향했다. 모두가 즐거울 때 우리는 슬펐다. 나의 엄마는 더욱 그랬다. 그녀는 오열을 하다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입맛이 없다며 누워있기만 하는 그녀에게 우리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억지로 밥을 먹였다. 장례식 마지막날 쓰러질 걸 예상한 친척 어른들은 나와 동생에게 "엄마를 꼭 붙들라"고 조언했다. 어른들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체수분이 다 빠져나갈 만큼 눈물을 쏟은 엄마는 급기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땐 나도 울었다. 외할머니 때문이라기보다 나의 엄마가 아플까 걱정돼서 그랬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나의 엄마가 더 소중했다. 순간 '엄마가 건강하게만 살아준다면 좋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기에 추억을 더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그녀의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못한 것을, 마음 편한 여행 한 번 못 간 것을 자책하며 슬퍼했다. 모진 나는 "있을 때 잘 하지 그랬냐"는 냉철한 말을 툭 뱉었다. 사실 그 말은 내게 던지는 채찍질 같은 것이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나만 생각하기 바빴다. 어리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이 무탈하게 지내던 때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갓 서른을 넘긴 직장동료가 위암3기 판정, 친하게 지내던 오빠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병과 죽음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가족과 추억을 많이 쌓아야지'라는 다짐이 강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형편이라 자주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가족여행을 하며 다짐을 실행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 영원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모든 것을 다음으로 미루기만 할 것이다. “다음에 밥 한 끼 먹자”는 인사치레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약 없는 약속에 관대할 만큼 넉넉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사람과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충실히 대해야 한다.


끝으로 작가의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는 글을 마음 속에 꾹 눌러 새겨본다. 죽음이 있기에 지금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죽음을 마냥 두렵고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자.



한편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 작가의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편을 엮은 것이다.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작가의 미문(美文)과 함께 일상을 반짝임을 발견해보자.



본 콘텐츠는 세계사콘텐츠그룹과의 협업으로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진행했으며, 내용은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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