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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리뷰

은밀하게 위대하게!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 소녀'의 모델을 상상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을 기초로 한 작품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걸이 소녀'는 베르메르의 대표작이나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내면 묘사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화가와 모델, 여주인과 하녀, 예술가와 파트롱의 관계와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려내는 외면화가 인상적이다. 직접적인 성애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영화들보다 에로틱한 무드가 이어진다. 치밀하게 배치된 성적 코드 때문이다.


열여섯 살 소녀 그리트는 아버지가 시력을 잃자 화가 베르메르 집 하녀로 들어간다.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는 그녀에게 화실 청소를 맡기고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그림에 매료된다. 이어 베르메르는 청순한 외모와 성숙한 내면을 지닌 그리트에게 빠져들고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베르메르의 집 안의 인물들은 서로를 염탐하고 감시하기 시작한다. 집안 재정을 관리하는 베르메르의 장모, 지나친 사치를 일삼는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 세속적인 베르메르의 후원자,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리트를 괴롭히는 베르메르의 장녀, 고참 하녀 타네케. 이들의 내밀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베르메르는 그리트의 초상화 작업에 매진한다. 그리트에게 진주 귀걸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베르메르는 그녀의 귀에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달기 위한 궁리를 세운다.


닫힌 공간에서 암묵적인 감시를 해대는 인물들. 이들의 상황은 여느 스릴러 영화들만큼 긴장감을 자극한다. 거기에 에로틱 무드까지 더해져 감상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회화를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영화 속에는 미학과 은유로 가득차 있다.



항시 두건을 착용해야만 하는 그리트에게 그것을 벗으라고 하는 베르메르. 이는 옷을 벗으라는 요구와 다름 아니다. 두건 벗는 모습을 훔쳐보는 베르메르의 눈길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의 '은유적인' 요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입술을 벌리고 핥으라고 하는가 하면 직접 그리트의 귀를 뚫어 진주 귀걸이를 달아준다. 이 장면은 처녀막 상실을 의미한다. 확대해석이 아니다. 그리트를 그린 그림을 본 가타리나는 그림에 대해 "음란하군요."라고 말한다.


결국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집에서 쫓겨나지만 최후의 승자로 볼 수 있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는 뮤즈인 동시에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도화지 위에 수놓은 아트버스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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