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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과 어울리는 추천 영화 3선

살랑살랑 따스한 바람이 분다. 봄이 오고있다는 증거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벚꽃 필 무렵이 온다. 본격적인 봄이 다가오는 지금과 어울리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허니와 클로버



'초원을 가꾸려면 꿀과 클로버가 필요하다' 달콤함과 행운이 모이면 반짝이고 파릇파릇한 '청춘'이라는 초원을 키워낼 수 있다. '나는 벚꽃이 좋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고나면 마음이 놓인다' 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영화 <허니와 클로버>는 청춘이 깨닫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청춘 로맨스'다. 동명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영화는 순수하고 또 순수하다.


영화는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 않는 미대생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미대생들은 그들 나름의 '아름다운 청춘'을 만끽하고 있다. 순수한 사랑이 있고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열정이 있다. 주변의 상황 때문에 포기하고 접어야 할 상황들이 있지만 그들은 잠시간 주춤하다가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당당히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하나모토 교수의 조카이자 천재적인 미술의 재능을 가진 '하구미'를 보고 첫눈에 반한 '다케모토',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하는 '미야마'.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바라보는 '아유'. 잠적을 감춘 후 여행에서 돌아 온 괴짜 천재 복학생 '모리타' 역시 '하구미'의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복잡미묘한 청춘들의 로맨스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청춘'을 정의내린다. 이들 청춘에서 약간 벗어난, 즉 순수한 열정을 지닌 벚꽃이 아닌 낙화하고 만 세대들이 보기에 이들의 사랑은 스토커와도 같고 때로는 휜 등뼈처럼 고장난 듯 불안하기만 하다. 공모전의 '틀' 때문에 추상화를 출품하지 못함에 방황하는 '하구'의 내면의 갈등과 낙담 역시 물질만연의 사회와 개인의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담아낸다.


<허니와 클로버>는 예술과 현실을 넘나들며 소소한 에피스도들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랑과 예술을 은유 위에 놓고 펼치는 작품인 만큼,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다. 특히 미대생들에겐 더없이 감정이입을 하기에 좋은 작품일거라 확신한다. 이 영화에서의 허를 찌르는 대사는 하구미와 모리타의 대화에서 등장한다.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모리타의 물음에 하구미는 이렇게 답한다. "그리지 않고선 못 견디니까!" 이는, 단순히 미술에만 해당되는 발언은 아니다. "왜 사랑을 하는 걸까?"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사랑을 하지 않고선 못 견디니까! 그렇다. 뜨거운 초원 위의 허니와 클로버는 '사랑'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고싶은 것들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시기, 청춘. 뭐든 포기하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시기 청춘. 이것이 바로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다.



4월 이야기



영화 <4월 이야기>는 <러브레터>로 남녀 불문하고 감수성을 불어넣은 이와이 슌지의 또다른 감성 로맨스다. 훗카이도를 떠나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우즈키'. 영화의 4분의 3까지는 우즈키가 도쿄에서 험난하고 외로운 대학생활을 즐기는 모습들이 스케치된다. 그녀가 즐기는 유일한 대학생활은 낚시 동아리, 그리고 홀로 가는 서점. 서점을 꾸준히 들러 책을 구입하는 우즈키는 각박한 도쿄 생활생활에서의 황량함을 그렇게 메워나간다.


매일 있던 서점의 점원이 갑자기 남자로 바뀌어 있다. 어색한 적막이 흐르는 서점. 자신의 일에 충실한 긴 머리 청년과 서점을 한껏 즐기고 있는 듯 보이는 우즈키. 아무런 사운드가 없는 서점은 조용함을 넘어 고요한 느낌마저 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서점 속 청년과 우즈키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시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즈키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여기에서부터 우즈키가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게 된 배경이 밝혀진다.


<4월 이야기>의 영상은 매 장면을 정지시켜 정사진으로 인화하고 싶을 만큼, 혹은 달콤한 음료수 CF처럼 유토피아의 연속이다. 옅은 아지랑이가 깔린 듯 부드러운 포커스의 파스텔톤 영상 위로, 청아한 피아노 선율까지 흐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감수성이 잘 살아난 데에는 마츠 다카코의 외모가 큰 몫을 했다. 스물네 살의 다카코는 파스텔톤 스웨터와 원피스 차림이 잘 어울리는 청순한 얼굴로, 첫사랑의 애틋함과 가족을 떠나 혼자 살아가는 신입생의 이모저모를 담백하게 연기한다.


무사시노라는 배경도 <4월 이야기>의 빼놓을 수 없는 장치다. 도쿄 주변부에 위치한, 휴식과 향수의 공간 무사시노는 작고 예쁜 집과 상점, 대학, 공원 등이 있는 곳으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을 잘 살려준다. 뽀얀 영상을 의도한 작품이라 윤곽선이나 선명도를 흠잡기 어려운 화면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직접 작곡한 피아노 선율도 청아하게 재생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의 기적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힘은 맑은 봄날처럼 좋은 기운을 선사한다. 당신의 4월에도 사랑의 기적이 일으나기를 바란다.



봄날은 간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버스와 여자는 지나가면 잡는 게 아니야."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들이다. 사랑은 변하고, 변한 사랑은 잡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영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One Fine Spring Day'.. 좋았던 '봄날(연애 기간)'은 한 때, 찰나에 그쳤을 뿐임을 극명하게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제목이다.


많은 이들이 허진호 감독의 사랑 영화를 '감성 멜로'라 부르지만 나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누구보다 현실의 민낯을 그리는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사실을 그림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은유적으로 그려내는 연출력 때문일 것.


<봄날은 간다>는 사랑을 '소리'로 표현한다. 대나무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바람 소리로 은수와 상우의 일렁이는 사랑의 기운을, 풍경 소리로 사랑의 울림을 표현한다. 흐르는 냇물 소리와 함께 둘의 사랑도 흘러간다. 매 순간을 놓치기 싫은 상우는 소리를 녹음하고 보관하지만 결국 사랑은 금세 식고 불어버린 라면처럼 형편 없는 게 되어버린다.


이 영화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은 공감이다. 누구나 고개 끄덕일 만한 사랑의 시작과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별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봄날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 그리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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