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헤어질 결심> 리뷰

사랑… 그 잔혹한 욕망

<헤어질 결심>은 영리한 멜로영화다. 노골적인 표현 없이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한다. 상징성이 다분해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대사, 아름다운 미장센, 짙은 여운.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박찬욱 감독의 완벽한 걸작이 탄생했다.


산 정상에서 한 남자가 추락해 사망한다. 변사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한다. 남편의 죽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서래. 경찰은 그녀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잠복수사를 하며 서래를 알아가는 해준. 그녀를 향한 마음까지 깊어지기 시작한다. 의심과 사랑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해준의 마음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해준은 누구보다 이성적인 형사였다.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그런 그가 서래를 만난 후 바뀌어버린다. 붕괴된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를 향한 해준의 의심이 관심과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은 지켜보는 영화다. 해준의 수사는 서래를 향한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이다. 누구보다 자존감이 높고 커리어가 중요했던 형사가 사랑때문에 추락하는 모습이 처연하지만 공감도 된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는 안개이다. 지독한 불면증과 안구건조증을 앓는 해준의 신체·정신적 상태는 자욱한 안개가 가득 낀 2막의 배경과 일치한다. 안개 낀 날의 흐릿한 시야는, 사랑 때문에 이성의 끈을 놓은 해준의 상황과 일치한다. 안개는 박 감독이 영화의 출발이라고 밝힌 모티브이기도 하다. 정훈희의 '안개'가 감독에게 영감을 줬고, 실제로 작품 속에서 이 노래가 자주 등장한다.


<헤어질 결심>의 매력은 같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다가설 수 없는 남녀의 상황에 있다. 서로를 욕망하지만 경계해야만 하는 현실. 이보다 더 지독한 멜로드라마가 있을까. 스마트 기기로 근근이 소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전해준 박해일, 탕웨이의 호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극장을 나와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엔딩 때문이다. 잔잔한 파도가 거침없이 밀려드는 파도로 변하는 장면은 해준과 서래의 상황을 반영한다. 뜨겁게 이글거리던 태양이 지는 모습 역시 둘의 사랑을 상징하는 메타포다.


"나는 당신의 미결사건이 되고 싶어요"라는 서래의 대사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는 해준에게 '평생 자신을 찾아 다니라'는 지독한 사랑 고백이자 잔인한 경고이다.


살인자를 사랑한 형사.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헤어질 결심>은 '디테일의 장인' 박 감독의 연출로 아름답게 빚어졌다. 절제된 감정선이 아이러니하게도 심장을 달뜨게 만든 영화다. 이 진귀한 감정을 경험하고 싶다면 극장으로 향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녀 2>, 액션보다 서사에 집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