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가는 인간에 대하여
학교에서 교사로 일도 하고 소설도 쓰는 한 남자가 한겨울 콜로라도산 속의 빈 호텔에 들어선다. 그는 폭설로 도로가 끊겨 5개월 간 휴관하는 이 호텔을 여유 있게 관리하면서 소설을 쓸 심산이었다. 그런데 호텔 지배인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몇 년 전에도 어떤 남자가 이 호텔이 휴관할 때 임시 관리인으로 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돌아 버려서는 자기 가족을 다 죽였다는 것이다. 얼마 후, 주인공은 호텔에 존재할 리 없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들에게 그 살인사건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이 반문한다. "그 살인마가 바로 당신이잖소!"라고 말이다.
<샤이닝>은 우리의 근원적인 공포를 다룬다. 내 속에 존재하는 살인마에 대해서, 마음속 심연에 존재하는 괴물에 대해서, 그것이 눈을 뜨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자기 속의 괴물을 느껴 본 사람에게 이 영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화와 고립
<샤이닝>은 고립을 그린 영화다. 조용한 곳에서 평화를 느끼며 글쓰기를 희망했던 작가 '잭'이 주인공이다. 겨울 동안 가족과 함께 호텔 관리직을 맡아 평화를 즐길 셈이었다. 하지만 평화가 고립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잭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광기가 표출되기 시작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바보가 된다"가 가득 메워진 글. 이는 영화가 전하는 주요 메시지다. 일과 놀이라는 단어로 표현됐지만, 이는 평화와 고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잭은 호텔 관리 기간을 '평화로운 삶'이라 말했지만, 호텔의 직원들은 이 기간을 '극도의 고립(고독)적인 삶'이라 표현한다.
고립 속에서 잭은 금했던 쾌락적 욕망들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술, 여자, 끝내는 살인. <샤이닝>은 평화를 꿈꿨지만 공포로 뒤바뀌는 일가족의 모습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전하는 영화다.
영혼
<샤이닝>은 영혼을 다루는 영화이기도 하다. 잭의 아들 '대니'는 텔레파시 기능인 '샤이닝'의 능력이 있다. 상상 속의 친구 토니로부터 오버룩 호텔의 과거를 알게 된 대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해일처럼 쏟아지는 피바다 장면을 목격한다. 그와 함께 하늘빛 원피스에 흰 양말을 신은 쌍둥이 소녀들의 영혼을 보게 된다. 그리고 소녀들이 도끼로 처참하게 당한 모습까지 본다.
또 다른 의미의 영혼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다. 영화 말미에 공개되는 흑백사진 속에는 1921년 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잭이 1921년에 오버룩의 지배인 삶을 살다 죽었고 환생한 후 웬디와 대니의 가장으로 삶을 살다가 오버룩 호텔로 우연히 오게 됐다는 말이 지배적이다. 나는 이 영화가 잭의 전생과 현생의 모습이 아닌 잭이 오버룩 호텔을 떠도는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1921년이 전생이라 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시점이지만, 영화의 중반에서 지배인이 잭에게 "당신이 이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계속 쭈욱-"이라고 말하는 걸 봐서는 잭, 그가 이 호텔에 상주하는 악명 높은 유령으로 짐작해본다.
호텔 지배인이 잭에게 '오버룩 호텔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샤이닝>이 영혼이라는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이 곳은 인디언의 묘지였고, 미국인이 점령한 후 인디언은 이곳을 다시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인디언 조상의 묘지인 이곳을 백인들이 점령했고, 이 곳에 오버룩 호텔을 건축했다. 인디언의 영혼들이 살아 숨쉬는 곳임을 영화 전반에 배치해둔 것 또한 '영혼'의 영화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장치.
잭만이 미친 것은 아니다
잭은 미쳐간다. 하지만 잭만이 미쳐가는 것은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 나 그리고 당신도 미쳐갈 수 있다. 영화 초반부에는 '잭과 그의 가족들이 본래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들'임을 알려주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대디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임을 증명하고 주인공 잭의 과거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웬디는 아이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부인이자 어머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영화의 후반에서는 칼을 들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삽을 휘두른다. 즉 <샤이닝>은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인간의 속성'을 다루는 영화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치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면 말이다.
강렬한 색채
<샤이닝>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색 빨강.
하나의 색채에도 채도와 명도 등에 따라 다양한 색채가 나오게 마련이다. <샤이닝>에서 자주 쓰여진 색채는 '핏빛'이다. 강렬한 핏빛은 공포 영화라면 갖춰야 할 요소인 살인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코드다. 피바다의 공포 뿐만 아니라 오버룩 호텔을 둘러싼 곳곳에서 강렬한 핏빛을 확인할 수 있다. 카펫, 벽면 그리고 주인공 웬디와 대니가 입는 옷들까지. 영화의 핏빛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데는 화이트의 힘이 크다. 새하얀 눈으로 가득 메워진 곳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핏빛은 극강의 공포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핸드헬드, Zoom in 등의 카메라 기법
유독 쫓고 쫓기는 씬과 인물들의 표정을 묘사하는 씬이 많은 영화이기 때문에 감독은 핸드헬드 기법과 Zoom in기법으로 장면들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핸드헬드는 인물들이 쫓고 쫓기는 상황을 생생히 묘사해주는 기법으로, Zoom in은 주인공, 잭 니콜슨의 표정에 관객들을 몰입하도록 하는 흡인력에 큰 역할을 한다.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하는 zoom in의 장면은 바로 잭의 미쳐가는 눈빛과 입꼬리가 섬뜩한 얼굴 클로즈업이다.
살인
가족을 의심하고 가족을 죽인다. 사실 <샤이닝>의 전개 암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대니다. 대니는 샤이닝이라는 영혼과의 대화를 나누고, 끊임없이 '레드럼'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내뱉는다. 마치 주문처럼.
레드럼(REDRUM)이 무엇일까. 뒤집어 쓰면 MURDER. 살인이 된다. 이처럼 대니는 앞으로 일어날 살인의 시간들에 대한 예고를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