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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임> 리뷰

멍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이 롱테이크로 비춰지며 시작되는 <셰임>. 남자의 이름은 '브랜든'. 뉴욕에서 잘 나가는 30대 남성이다. 여피(YUPPIE)족인 그는 겉보기엔 말끔한 사람이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재력과 직장을 갖고 있고, 인간관계도 꽤 괜찮아보인다. 자유분방한 섹스라이프도 즐기고 있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민낯(속사정)은 겉보기와 다르다. 하루의 일상을 팔로우하는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의 과잉 성욕이다. <셰임>은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브랜든의 삶을 보여준다. 성기는 물론, 마스터베이션까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든은 집을 벗어나는 순간 민망한 민낯을 감추고 이성적인 뉴욕커로 변신(연기)한다. 욕망을 철저히 감춘 채 보통의 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낯선 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지하철 씬은 <셰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브랜든이 흘끗대는 보랏빛 여성. 그 여성 또한 브랜든의 관심을 눈치챈다. 심지어 브랜든은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여성을 쫓기까지 한다.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벗어나는 순간, 브랜든은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지하철 옆좌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브랜든의 '실체'를 알 리 없다. 그의 채워진 지퍼 속 사정을 알 리 없는 대중은 겉모습만으로 그를 인텔리한 뉴요커 쯤으로 판단할 것이다. 섹스중독자이자 여성편력이 심하다는 것을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셰임>은 도시민의 삶에 대한 환상을 싸그리 지운다.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는 불안정한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브랜든은 씨씨를 비난하지만, 씨씨가 비난 받아야만 할 인물은 또 아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 중에는 브랜든에게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상당할 것이다.


뉴욕에 대한 로망이 가득한 씨씨, 성공한 브랜든. 이들의 민낯(=수치)가 드러나는 순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수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브랜든과 씨씨는 모습은 우리의 거울인 셈이다.


브랜든의 민낯을 염탐하는 것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셰임>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영화는 현대인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결혼이라는 관습 때문에 괴로워하는 순간 섹스중독자가 발기부전을 겪는 장면은 현대인의 압박과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씬이다.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브랜든은 데이트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에게는 사랑보다 섹스, 즉 동물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감정보다 육체가 앞서는 그에게 관계의 산물인 연애와 데이트, 그리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육체를 지웠을 때 남는 건 무엇일까.



주변을 돌아봐도 브랜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과 관계맺기가 결여된 사화. 자신의 욕망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겉으론 멀쩡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브랜든처럼.


<셰임>은 '브랜든의 수치를 보여줄게'가 아닌 '네 사생활을 돌이켜 봐'라고 말한다. 과연 이 영화를 보며 일말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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