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로 마무리되는 '장 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 전시. 하마터면 놓칠 뻔했는데, 관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장 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장과 미술관 앞 야외 조각공원, 덕수궁 내 연못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오토니엘 개인전으로는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장 미셸 오토니엘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로, 인도 유리공예인들과 협업해 만든 유리구슬, 유리벽돌 작품 등으로 유명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크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작가인데, 호텔 및 레스토랑 등에서 그의 작품을 설치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2011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최된 '장 미셸 오토니엘: MY WAY'전을 관람했었는데, 그때는 지금만큼 많은 인원이 찾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토니엘의 작품은 겉보기에 영롱하게 빛나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가까이에 다가가 대화의 시간을 보내면 아름다움 이면의 불안과 상처, 고통 등이 공존함을 확인할 수 있다. 수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유리구슬의 흠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거대한 목걸이로 완성된 작품은 흠집을 감추고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루브르의 장미>는 2019년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작품이다. 오토니엘은 루브르의 소장품 가운데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이란 작품에서 화면 정중앙 인물들의 발밑에 떨어진 장미를 포착했다. 이 붉은색 장미는 열정과 권력, 승리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죽음보다 강력한 여왕의 사랑과 운명,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오토니엘은 이 장미에서 받은 영감을 백금박을 칠한 캔버스에 검정 잉크를 사용해 무한한 힘으로 가득 찬 추상적인 형태로 그려내고 있다. (전시 도록 중)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위해 <루브르의 장미>를 변형시킨 <자두꽃>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자두꽃>은 덕수궁 내 건축물에 사용된 오얏꽃 문양에서 착안한 것으로, 오얏꽃은 자두꽃의 고어이다. 오토니엘의 <자두꽃>은 꽃잎을 표현하는 붉은색과 꽃가루를 표현하는 노란색 두 가지로 그려냈다. (전시 도록 중)
두 가지 색으로 제작된 <프레셔스 스톤월> 연작은 코로나 시기 봉쇄(록다운) 기간에 오토니엘이 매일 일기처럼 그린 드로잉을 바탕으로 제작해 2021년 처음 선보인 바 있다. 오토니엘은 매일 색을 입힌 벽돌들의 새로운 조합을 그렸는데, 이는 마치 작가가 느끼는 감정을 적은 일기와도 같다. 이런 일기의 연장선으로서 이번에 전시된 <프레셔스 스톤월> 연작은 매일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염원을,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마법의 힘을 이야기한다. 인디언 핑크, 샤프론 옐로, 에메랄드 그린 등의 신비로운 색감은 보는 우리를 상상의 여정으로 이끈다. (전시 도록 중)
오토니엘은 2009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게 경의를 표하는 <라캉의 매듭>을 처음 제작한 이후, 구슬을 연결해 만든 다양한 형태의 매듭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목걸이 연작이 감성을 담아내며 시적인 표현을 추구한다면, 매듭 연작은 이성적이며 우주를 포함한 과학의 분야를 아우른다. (중략) 반짝이는 구슬의 표면에서 무한히 상호 반사되는 이미지를 통해 '와일드 노트(매듭의 엇갈림이 무한히 반복되는 형태를 말하는데 때문에 현실에서 와일드 노트를 물리적 형태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전시 도록 중)
<푸른 강>은 오토니엘이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중 가장 거대한 크기로, 길이 26미터, 폭 7미터에 이르는 넓은 면적의 바닥에 벽돌이 깔려 잔잔한 물결의 푸른 강을 연상시킨다. 벽돌의 푸른색은 인도어로 '피로지(Firozi)'로 불리는 색상으로, 지중해를 비롯해 인도-유럽 문명권에서 널리 사용된 구릿빛 푸른색을 의미한다. 파란색은 하늘과 물을 상징하는 색으로 '생명', '생존'과 같은 긍정적 의미를 전달한다. (전시 도록 중)
<오라클>은 오토니엘의 작업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시적인 작업으로, 주변의 모든 것에 예민한 선지자 혹은 예언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라클> 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작업에는 강렬한 신탁적 존재가 서려 있다. 나의 작업에는 직관적인 무언가가 있지만 동시에 신의 계시나 명령 같은 것 또한 존재한다." <오라클>은 형태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인 도널드 저드의 엄격함을 연상시키지만,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을 최소화했던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오토니엘은 그 안에 자신만의 시적 은유를 담아내고 있다. (전시 도록 중)
작가는 'MY WAY'전 관련 인터뷰에서 "누구나 상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상처를 감추는 대신 그 위에 쌓아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성장시키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주니까요."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유리벽돌에 섞인 불순물은 벽면에 다채로운 빛을 만들어낸다. 상처를 극복하고 아름다움으로 거듭난 작품들처럼, 모든 상반된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덕수궁 연못에 전시된 작품은 '새로운 생명은 죽음에서 양분을 얻어 소생하며, 인간의 삶 역시 고통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희망을 당겨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장 미셸 오토니엘은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한국의 전통 건축과 공예 회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연꽃 문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꽃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띠는데, 진흙에서 깨끗한 꽃을 피우기에 '순결'이나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며, 연꽃의 씨앗은 천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울 수 있어 '생명력', '다산', '창조의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토니엘은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혼탁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고통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랐던 불교 문화에서의 메시지를 빌려오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마법의 손길을 더해 연꽃에 동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스테인리스스틸 구슬 하나하나에 손으로 금박을 입혀 만든 추상적 형태의 <퐝금 연꽃>은 주변의 초록색 풍경과 대조되며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시 도록 중)
'장 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전을 통해 모든 빛나는 것들의 이면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약 전시를 보러 갈 계획이 있다면, 유리구슬과 벽돌의 흠집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